어느덧 5월도 중반을 지나 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워디 독자분들은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던 때에 시작된 코로나 19 바이러스도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이어져서, 벌써 계절이 두 번 바뀌는 시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코로나로 ‘잃어버린 일상’도 옛말이 되어, 이제는 코로나로 ‘새롭게 만들어지고는 일상’이 더 맞는 표현이 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를 생각해 보았을 때, 일상이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은 아무래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비중이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는 출근하고 퇴근하고 먹고 자고 일어나고, 그렇게 반복되는 생활을 보조하는 공간으로서의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24시간을 연이어 길게는 몇 주에서 몇 달을 넘기며 집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 많은 분들이 집멀미, 집태기(집+권태기)로 고생하신다는 우스개 소리를 종종 듣습니다.
이 집멀미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은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대면 강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학기 초의 분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반전되었고, 한 학기 전체로 온라인 사이버 강의(일명 싸강)가 연장된다는 소식에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이번 주까지 10주간의 수업을 진행하면서 교수도 학생도 다 같이 싸이버 전사로 거듭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다 몇 주 전 문득, 학생들에게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누구의 잘못도 아니게 벌어진 이 상황을 타개하는 생활 속 발견을 하게 해 주고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에 낸 여러 과제 중에 하나는 ‘나만의 집멀미 극복 대책?’에 대해 포스트잇에 써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받은 요즘 대학생들의 답변은 무엇이었을까요? 몇 개의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소개드려볼게요.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가 가장 솔깃하시는지요? 🙂
이 외에도 많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있었는데요, 가장 많은 학생들이 내놓은 집멀미 극복 대책은 청소, 셀프 인테리어와 같은, 집을 들여다보고 돌보아주는 것이었습니다. 또 가족과 사는 친구들은 가족들과의 이렇게 오랫동안 붙어있어 본 경험이 없다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혼자 사는 친구들은 요리, 홈카페, 향초 피우기 등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좋아하는 소품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내용을 모아 보면, 학생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집에서의 즐거운 경험을 쌓는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전에 레터를 통해 ‘음미하기(savoring)’는 과거, 현재, 미래의 긍정적인 경험(즐겁고, 행복하고, 신나는 등의 긍정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에 참여함으로써, 긍정적 정서를 경험하고, 그런 경험을 더 향상하고, 유지하는 활동이라고 소개드린 바 있습니다.(음미하기 딱 좋은 날) 어찌 보면 학생들은 코로나 이전에 바쁘게 달리던 일상에서, 씻고, 먹고, 자고, 생활을 위해서 기능했던 집을 이제는 음미 가득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음미를 가장 활용하는 경우는 ‘여행’을 갔을 때입니다. ‘이 곳에 언제 또 와 보겠나’, ‘이 음식을 언제 또 먹어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은 지금의 상황을 최대한 만끽하고자, 온 감각을 열고 즐기게 합니다. 그렇게 여행에서 활용했던 이른바 ‘음미력’을 일상의 공간인 집에서 빈번하게 발휘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의 지혜를 얻어 저도 집을 음미하기 위해 몇 가지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해가 가득 들어오는 오후 3시에 모든 창을 활짝 열고 들리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화장실 환풍구에서 나팔처럼 ‘우웅~’하고 들리는 소리를 감상해봅니다. 밤공기가 쌀쌀한 날은 주전자에 보리차를 가득 끓여 온 집안을 보리 냄새로 채웁니다. 무료한 오후에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틀고 유튜브 ‘essential;’ 채널의 음악을 클릭합니다. 사실 그다지 품이 많이 들지 않는 소소한 것들이지만, 그렇게 쌓은 집에서의 긍정적 정서를 느낀 긍정적인 경험들은 적어도 저에게 코로나 블루로 갑갑하고 우울해지려는 마음을 다독이는데 꽤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도하고 연습한 음미는 ‘내가 언제 또 이렇게 집에 계속 있어보겠나’, ‘언제 이렇게 가족들과 주구장창 붙어서 생활해보겠나’ 하는 생각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코로나로 일상을 잃어버렸는 줄 알았는데, 나의 가장 기초가 되었던 일상을, 집, 가족, 시간, 삶과 죽음을 다시 찾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코로나 정국도 조금은 완화된 분위기입니다. 아직은 경각심을 놓치지 말고 조심해야 하는 시기이지만, 주어진 상황을 모두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음미라면,
요즘처럼 나의 음미의 기술을 단련하는데 적절한 시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주말, 지금 내가 여기서 음미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지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이 레터를 받아보시는 모든 분들의 건강과 안전을 바라며 레터를 보냅니다.
5월의 포근한 주말 오후에,
Be Wodian, Ellie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