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제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에 오니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도 좋고,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갈아주시는 과일 스무디도 맛있고, 무엇 보다 저의 사랑인 조카를 자주 볼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2011년 말 에 싱가폴로 떠났으니 횟수로는 이제 5년이 되네요. 싱가폴 취업수기라는 글을 지금은 팔아버린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쓰고, 짐 가방을 쌌던 날이 어제 같은데 이렇게 시간이 훌쩍 지났어요.
생각해 보니 제 인생을 대강 8조각으로 나눈 피자로 본다면, 그 중에 한 조각은 ‘싱가폴 맛’이 되겠네요. 물론 ‘대학생 맛’, ‘한국 직장인 맛’ 이런 것도 저의 인생의 피자에 섞여 있을 것이고요. ‘싱가폴 맛’의 피자 조각에 담긴 토핑은, 새로운 일, 새로 만난 친구들 그리고 제 남편과의 인연도 올려져 있겠지요. 왠지 이 부분은 ‘뜨거운 온도로’ 다른 조각에 비해서 바짝 구워져 있을것 같아요. 갈색으로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피자의 도우, 머리안으로 상상이 되시나요? 🙂
이번에 싱가폴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에서, 영화 [브루클린]을 봤습니다. 이 전체의 스토리는, 한 여성의 성장영화로 아일랜드의 가족을 떠나 새로운 세계, 미국으로 발걸음을 움직이는 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예요. 보는 내내 저를 투사하면서 주인공의 성장과 좌절 그리고 그녀의 선택들을 숨죽여 관찰했어요. 모든 부분이 저의 스토리와 닮아있지는 않았지만 가족을 떠나, 새로운 기회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제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에서 주인공이 아일랜드의 가족을 떠나는데, 그 가족 구성원도 모두 여자, 새로운 직장에서 만나는 동료들도 모두 여자, 숙소에서 같이 지내는 분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거예요. 심지어 중반 정도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도 여성을 지배하거나 통제하지 않는, 한발짝 뒤에 떨어져서 존중과 응원으로 여자 주인공을 도와주고요.
영화 안의 ‘브루클린’이라는 곳은 뉴욕의 한동네를 의미하지만, 영화를 보는 제게는 인생에서 만나는 혹은 창조해내는 ‘새로운 세계’라는 조건으로 해석 되었어요. 그러면서 제게 인생에서 만나는 ‘브루클린’ 이라는 기회는 어디 있을까? 어떤 의미일까? 생각도 해보고요. 5년전 싱가폴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사고 20kg 캐리어 가방에 옷을 하나씩 접을때 나에게 싱가폴이 바로 그 ‘브루클린’ 이었겠구나. 그럼과 동시에 미래에 나는 내 인생의 몇번의 ‘브루클린’을 만날 수 있을까..? 질문도 해보고요.
임상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리코의 책, ‘사랑이 두려움을 만날 때’에는 이런 귀절이 있지요. ‘어른이 된 우리에게는 이제 두가지 임무가 있다. 곧 가는 것과 되는 것( to go and to be)이다. 성숙을 위한 첫 번째 임무는 도전, 공포, 위험 그리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는 것이다. 두 번째 임무는 그것을 인정을 받건 그렇지 않건 간에 단호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인정은 다른 사람의 마음 안에 나의 투사(projection)가 함께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혹시나 영화를 찾아서 보실 분들을 위해서 결말을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저는 영화의 엔딩을 보면서 위의 귀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른이란, 용기를 내서 브루클린 (새로운 세계로) ‘가는 것’ 그리고 선택한 환경에서 (원하는 그 꿈으로) ‘되는 것’ 이 되는 것이겠구나, 그렇게 되새김질을 해보았어요.
오늘 우리가 만나는 브루클린, 아니 만나고 싶은 그 곳은 어디에 있을까요?
인생의 여정에 따라 가는 것 (to go)이 중요한 단계일 분들도 있고, 되는 것 (to be)가 중요한 분들도 있겠지요. 또 복잡한 공항처럼 떠나는 여행자와 돌아오는 여행자가 교차되는 지점에서, 브루클린을 ‘찾아가는 나’와 그 안에서 ‘되어가는 나’가 한곳에 만날 수도 있고요.
외롭고 보장된 것이 없는 신세계로 들어가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여성이라면)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감동에 푹 빠지실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 주말에, 브루클린으로 떠나보세요! 🙂
내가 선택한 세계, 그 세계 안에서 사는 나.
여러분이 상상하신 그 곳으로 순항하시길 빌며..!
Happy branding,
Jas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