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동안, 저와 제 남편은 미국을 갔다왔습니다. 3월에 결혼을 하고 미뤄둔 신혼 여행을 반년만에 다녀왔어요. 싱가폴에서 살고 있으니, 신혼 여행지로는 가까운 동남아 국가보다는 큰 맘을 먹어야 갈 수 있는 나라들로 가려고 오랫동안 고민했지요. 남편이 싱가폴로 오기전에 뉴욕에서 5년 동안 살면서 행복했던 추억을 지난 몇년간 귀가 따갑게 들었고, 저도 아직 미국은 가보지 못했던 터라, 신혼 여행지를 미국으로 정했습니다. 2주동안 샌프란 시스코와 뉴욕 두 도시를 가되, 중간에 나파밸리도 넣어서 도시에서 벗어나 거대한 포도밭과 푸른하늘도 만끽하기로 했어요. 오랫동안 설레여 왔고, 반년간 기다려 왔기에 허니문은 분명 달달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남편과 저는 여행을 같이 많이 한 사이이고, 둘다 여행을 아주 좋아합니다. 성격은 많이 달라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저는 뜨거운 해 같고, 남편은 부드러운 구름 같아요) 여행이라는 키워드로는 통하는게 많으니까, 한국을 경유해서 가는 최장 18일의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요.
근데, 그런 제 생각이 깨지는데, 사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신혼 여행이라도, 도시로 떠나는 이 빡빡한 일정은 그냥 미국으로 옮겨둔 우리의 일상의 축소판이었어요. 남이 차려준 식사이긴 하지만 조식을 먹고, 어디를 갈지, 어떻게 갈지, 그날 점심은 어떻게 할지, 어떻게 돈을 쓸지, 어떻게 하면 최대한 낭비하지 않을지, 다니면서 언제 나는 혹은 그는 쉬고 싶을지, 얼마나 쉬고 싶을지, 무엇을 먹을지, 언제 먹을지, 언제 하루를 마감하고 호텔로 돌아 올지, 수 많은 선택지 앞에서 상의하고 조율하고 가끔은 서로의 의견을 강하게 어필하는 과정을 몇번 겪었습니다. 토라지기도 하고, 삐지기도 하고요. 그런 과정이 작지만 여기저기서 자주 반복되니 평소보다 더 심리적으로 지쳐갔어요. 더 나아가 ‘나름 신혼여행인데..’ 라는 프레임은 조건과 상대에게 더 높은 기준과 서비스를 요구하게 되어, 어지간히 잘 해서는 감동하기 힘든(?) 역설적인 오류를 가지게 되기도 했죠.
샌프란 시스코가 너무 아름답고, 날씨도 정말 참 좋았는데 날이 갈 수록 저는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왜 그럴까? 왜 저럴까? 왜 이렇게 다를까?’로 시작된 질문은 화약이 잔뜩 묻은 성냥 같아서 조금만 날카로운 곳에 스쳐도 자꾸 불이 났습니다. 그런 질문을 품은 제가 결국 제 마음을 까맣게 태우고 있었고, 곁에서 있던 남편 마음에도 몇번의 화상을 냈지요.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시작된 다툼으로 일어난 이 불씨는, 저를 다른 이유로 더 힘들게 했어요. 그건 이런 과정을 슬기롭게, 지혜롭게, 더 여유롭게 극복하지 못하며 찡그리고 있는 제 얼굴을 그대로 마주하게 했거든요. 남편과의 작은 다툼안에서 보게 된 것은 그러니까 남편의 진짜 얼굴이 아니라, 저의 진짜 얼굴이었어요. 불완전하고, 나약하고, 좁은 나. 시차로 새벽에 잠을 설쳤을때, 낮동안 남편에게 보여준 내 얼굴을 복기해보니 얼마나 못생겼던 지요. 남편에게는 미안하고, 스스로에게 실망스런 마음이 교차되는 그러한 며칠을 보내고, 우리는 샌프란을 떠나 나파밸리로 움직였습니다.
인간이 만든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도시를 떠나, 신이 창조한 자연 가깝게 오니 훨씬더 마음이 여유로워졌어요. 나무, 풀, 바람, 하늘 그리고 와인 한잔은 생채기로 따끔거리며 아파했던 우리 둘의 마음에 좋은 치유가 되었어요. 그리고 한 와이너리 입구에 도착해서 ‘Before I die’ 칠판을 우연처럼, 필연처럼 만나서 저는 한참을 서 이 칠판에 있는 글자들을 읽어 보았답니다.
테드에도 소개가 된 Before I die 프로젝트. 내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적어 보는 심플한 과정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지요. 한줄 한줄 읽다가.. 저는 이 문장을 발견하고,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저기 노란 글자로 되어 있는 저 문장이예요. 죽기전에, 나는 우리 남편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다. (인종과 국적을 초월하는 알수 없는 이 동질감이란…! ㅎㅎㅎ)
같이 칠판을 구경하던 여성분들은, 모두 환호하며 이 문장에서 다 웃고, 아아주 정확! 하다고 한마디 씩 이야기를 하고 지나갔습니다. 샌프란에서 부터 구겨진 초상화를 마음안에 들고 있던 저도, 크게 웃고 나니 마음이 풀어졌어요. 🙂
빈칸에 저도, 남편도 한마디씩 적었습니다.
남편은 ‘죽기 전에 이 와이너리에 와이프와 가족과 함께 다시 오고 싶다.’ 라고 적었고요, 저는 ‘죽기 전에 내 마음에 있는 것들을 잘 살펴 보고 싶다’ 라고 적었습니다. 남편과의 다툼, 토라짐, 서운함 그리고 불필요하게 느꼈던 관계의 좌절감은 남편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그걸 다 알고도 이해하기 싫어 한켠으로 미뤄두었던 저의 마음의 게으름이 었단 생각이 들었어요. 얼굴이 펴졌고 다시 손을 잡고, 남편에게 말했지요. Let’s enjoy this moment!
그리고 저는 와이너리에서 남편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도시를 떠나서 인지, Before I die 칠판을 보고나서인지, 아니면 진판델 한잔 덕인지는 모르지만.. 지난 며칠 예민하게 굴고, 상처를 준 것에 대해서 사과했어요. 남편은 다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니 걱정말고, 미안해 하지 말고 남은 시간을 즐기자고 했고 저도 정말로 그리하자 했습니다. 행복하고, 감사하고, 미안하고.. 그런 밤이었습니다. 왜 여행이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는지, 새삼 다시 알게되었고 나의 나약하고, 좁고, 불완전한 자아를 잘 보둠어 주는 남편에게 더 잘 해주어야 겠다고 생각 했어요.
천국같았던 나파밸리를 떠나, 크레이지 도시인 뉴욕에 와서도 가끔은 다투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넘어지지 않았고, 18일은 꼭 붙어서 아무런 일도 못한채 서로를 바라보고 모든 의식주를 함께 해결하는 과정에서 또 새로운 파트너쉽의 방법을 배웠어요. 이틀에 한번은 서로의 공간을 주기위해 1-2시간은 각자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따고 하고 다시 만났고 (그러니 더 반갑고 좋았어요) 정말로 다른 곳의 선호도가 분명할땐, 각자의 의견을 존중해 한번씩 양보해주고 결정된 것에는 불만을 가지지 않고 최대한 즐기며 음미했습니다. 나름 나를, 남편을 잘 안다고 했지만, 앞으로 더 잘 알아가 봐야 겠구나- 그런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된 여행이었어요.
죽기전에 원하는 것- 저는 마음을 살펴 잘 알아 보는 것이라 적었는데..
오늘 여러분은 어떻게 적어보시겠어요..? Before I die, I want to … 이번 주말에, 친구에게, 파트너에게, 배우자에게 한번 여쭤보고 경청해 보시면 어떨까요? :o)
Happy Branding,
SBL Team/ Jas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