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새로운 챕터를 준비하는 8월이 왔습니다. 6년간 살았던 싱가포르를 떠나 한국에 온지도 이제 10일째.
한국에는 매년 여러번 방문을 했었지만, 이번 방문은 저희에게 조금 더 특별합니다. 지금껏 방문의 목적이 대부분 비즈니스 혹은 가족과 보내는 휴가 였다면, 이번에는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기 위한 ‘출산’의 준비를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는게 가장 다른 점이겠지요. 올 봄에 ‘어디에서 아이를 낳을까?’ 에 대한 여러가지 옵션을 고민하다가, 한국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가족들과 함께 곁에서 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저희 부부는 그 결정을 위해 여러가지 준비했고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 오피스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된 남편의 ‘워크 디자인’ 부분을 오늘 같이 이야기 하면 어떨까 합니다.
저의 남편은 호주 마켓을 기반으로 하는 금융관련 세일즈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주는 남편이 회사에서 혼자 단독으로 맡고 있는 마켓이기에, 지난 몇년간 20-40%의 강행군 출장을 마다하지 않고 자주 비행기를 탔지요. 이번에 제가 9월에 출산을 앞두고 적어도 4-5개월 동안 한국에서 몸조리와 육아를 해보고 싶다고 했을때, 처음에 남편은 난색을 표했습니다. 한국어를 전혀 못하고, 한국 마켓을 전혀 모르는 남편이 아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고 회사 쪽과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저에게 한국을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남편 혼자 싱가포르에 있는 것은 더더욱이나 괴로운 문제였지요.
‘흠.. 그래도, 일단 물어보고 회사에 이 안건에 대해서 논의를 시작해보자. 그냥 힘들다고, 안될 것 같다고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니까.’
남편은 상사에게 미팅을 신청해서 여러가지 사정에 대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상사가 남편에게 전달해 준 답은, 아쉽게도 ‘No’ 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지요. 남편이 맡고 있는 일들이 한국 오피스에서 일을 할 만큼 연관성이 있지 않고, 한달 정도 되는 기간도 아니라 5-6개월의 장기 파견 근무를 요청하는 것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제가 예전 인사부에 있었던 기억을 떠올려 봐도, 이런 직원의 요청에 바로 Yes라고 할 상사는 거의 없어요.)
회의를 마치고 풀이 죽은 남편이 돌아온 저녁, 같이 식사를 하면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회의에서 한 이야기를 다시한번 나에게 이야기 해 줄래? 당신의 일은 조직안에서 디자인 되고 있으니, 당신의 첫 고객이 바로 상사잖아. 상사를 고객으로 두고, 지금 현 상황을 다시 분석해서 바라보면 좋을 것 같아.’
남편이 상사에게 이야기 한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아내가 임신을 했고, 오랜 결정 끝에 아내는 한국에서 출산을 하고 싶다고 결정을 내렸다. 아빠로, 남편으로써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고 우리의 행복과 웰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내가 한두달 안에 싱가포르에 오고 싶어하지 않으니 가능하다면 아내가 있고 싶어하는 기간인 최소 4-5개월은 나도 한국에서 근무를 하고 싶다. 내가 곁에 없으면 아내가 무척 외로워 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그랬죠.
‘정말 이렇게 이야기했어?! 내가 상사라도 안된다고 할것 같은데?! 당신의 스토리 텔링에는 ‘나’만 있고, ‘고객’은 없자나. 나에게 중요한 것만 설파하면 그쪽에서 과연 마음을 열어주겠어?’
그리고 워디박스에서 쓰는 고객 공감 캔버스를 이용해 몇가지 설명을 덧 붙였습니다. (여러분도 같이 생각해 보세요,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나의 고객에게 나의 생각을 어떻게 어필할까?) 우리가 가진 서비스를 무턱대고 들이대기 전에 내 서비스를 향유해줄 ‘그 고객’에 대한 분석을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남편의 상사를 중간에 놓고, 아래의 번호 순서대로 1. 남편의 상사가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며 성과 관리를 하는지 고민해 보았고 2. 그 상사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한국 오피스의 대표, 인사부 헤드, 싱가포르 오피스 대표 등) 누구이며, 이 결정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3. 남편의 상사가 최종적으로 남편에게 원하는 것, 그리고 그의 일의 성과를 위해서 그리는 그림들, 4. 마지막으로 상사가 느끼고 있는 불안감과 스트레스는 어떤 것이 있는지 심도있게 적어가면서 이야기 했어요.
(위의 캔버스의 저작권은 워디랩스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주 뒤에 남편은 다시 상사와 미팅을 신청했습니다. 이미 안된다고 한 상사에게 다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남편의 이야기는 이제 ‘고객 중심’의 대화로 이렇게 바뀌었답니다.
‘내가 지난 번에 요구한 내용이 팀, 특히 당신의 성과와 회사생활에 어떤 불편함을 가지고 올지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 호주로 출장을 자주 가야 하는 내가 막무가내로 한국 오피스에서 일을 하겠다고 했을때, 당신은 분명 당황스러웠을 것이고 불안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국 베이스로 일을 해도, 호주와 싱가포르에 있는 중요한 고객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갈 수 있을 방법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지난 번에는 그런 이야기를 전혀 하지 못했다.
또한 당신이 상사로 느끼는 딜레마, 단독 의사 결정권자가 아니니 다른 사람들을 설득 할때 어떤 논리로 이야기를 할지도 사실 머리 아픈 부분일텐데 이 부분에 대한 준비도 부족했다. 이번에는 내가 한국 오피스에서 일을 해도 비즈니스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는 이유 (특히 출장관련 비용 문제)도 내가 미리 준비하고 리서치 해 두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새로운 가족의 탄생으로 겪게 되는 여러가지 초반의 혼란을, 한국으로 옮겼을때 오히려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뜻은, 새로운 변화에도 내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성과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뜻이고, 결국 나의 퍼포먼스의 영향을 받는 당신의 성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근무를 탄력적으로 다시 한번 고려해 달라.”
그 미팅 이후에도 관련 담당자들과 몇번의 미팅을 더 했고, 결국 ‘고객 공감’을 전략적으로 잘 성공적으로 이루어내어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잘 셋틀인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객 공감 내용은 워크 디자인 공식에 들어있긴 하지만, 예전에 제가 비즈니스 스쿨에서 가르쳤던 협상의 전략과도 사실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답니다. 결국 회의의 목적도 설득, 워크디자인의 핵심 아이디어도 나의 서비스를 정리해서 세상에게 알리는 브랜딩, 협상의 목적도 설득을 통한 win-win 이니 고객을 공감해서 대화의 내용을 짜는 것은 어디서든 늘 중요한 문제이지요.
남편은 제가 하는 일을 창직이나 창업에 관련된 교육으로만 여겼는데, 이번에 한국에 셋틀인을 잘 하게 된 뒤에는 조직 안의 워크 디자인에도 좋은 이론이라는 상당히 개인적인(?) 피드백을 주었답니다. 워디박스의 메타포, 그 박스 안에서 쓰고 있는 워크 디자인 캔버스는 ‘일을 하는 우리’ 라면 꼭 한번 짚고 넘어가면 좋은 내용이니, 조직안에 있어도 충분히 활용가능 하다는 것을 저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지요.
저희의 계획대로 남편은 이제 9월 부터는 광화문으로 출근해서 일을 하고 필요에 따라 호주로 출장을 가고, 화상 회의를 통해 싱가포르 팀과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되었답니다. 한국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우리 셋이서 온전한 가족으로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기쁨은, 워디박스 캔버스의 이해를 통해 받게된 보너스이겠지요?
혹시 오늘 잘 안풀리고 복잡한 문제가 있다면, 위의 고객 공감 캔버스에 그려진 질문을 통해 다시한번 새로운 프레임으로 바라보실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대화의 중심을 ‘나’에서 ‘고객’으로 옮겨 생각해 보는 습관, 그리고 덧붙여 내가 원하는 바를 같이 이루는 win-win하는 전략. 우리가 원하는 일을 디자인 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일테니까요.
아직 무덥고 습한 날씨, 건강 잘 챙기세요.
Be Wodian,
Jas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