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았습니다. 9월 중순, 예정일 새벽에 양수가 터져서 급하게 병원에 도착해, 주사를 맞고 이틀간 꼬박 진통을 했어요. 결국에는 응급으로 제왕절개를 하고 고생은 했지만, 다행히 건강한 아기를 만났습니다. 지금은 덤덤하게 이야기 하지만, 병원 분만실에서 겪었던 경험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과 상상 이상의 고통이었어요. 엄청난 양의 약과 수술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수유실을 왔다갔다 했던 그 며칠은 마치 호된 ‘엄마 신고식’ 처럼 느껴졌어요. 귀엽고 어여쁜 아기를 얻는 것에 대한 지불 댓가를 톡톡히 치루게 끔 만들어, 전쟁 후 훈장을 얻듯 그렇게 엄마가 되도록 말이지요.
병원과 조리원에서 3주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와 하루하루를 보낸지 이제 한달이 되어가네요. 잠투정으로 아이가 울면 아직도 침착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같이 울고 싶어지는 초보엄마 이지만, 그래도 아이가 주는 달콤한 눈 맞춤, 저만 알아보게 살짝 보여주는 웃음에 육아의 고단함을 내려 놓곤 합니다.
지난 50일을 돌아보니 많은 사람들 (특히 육아 선배들)이 우려한 것 처럼 새벽에 수유하는 것, 아이 때문에 집 밖 외출이 쉽지 않은 것, 모든 스케쥴과 우선순위를 아이에 맞추는 것들이 힘들었기는 했지만, 정작 제가 제일 힘들어 했던 것은 의외로 ‘아이에 대한 대처’가 아닌 ‘엄마가 된, 저에 대한 대처’ 였어요. 아이의 탄생은 동시에 엄마의 탄생이었고, 아이가 세상에 적응해 나가면서 자라듯 저도 엄마로 되어가는 성장통을 겪었답니다. 그 성장통 중에 오늘은 ‘일’ 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해요.
예정일 이틀 전까지 팀들과 함께 교육을 받고 심지어 병원에 입원했을때도 싱가포르 파트너와 콜을 할 정도로 일을 놓지 못했던 저는 육아와 동시에 ‘일의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육아로 손발이 묶여서 하루에 한시간도 자유시간이 허락되지 않을때가 더 많은데, 좌뇌 혹은 우뇌 아니, 일의 뇌는 저에게 끊임없이 다양한 요구를 하더군요. 아이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 아닌가,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서 무엇인가를 더 해내야 한다는 주문을 스스로 걸고 있었지요. 알 수 없는 부담감이 들었어요. 출산전에 팀원 들과 약속해 둔 산재된 일들의 리스트가 눈 앞에 환영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기본적으로 저는 일을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랍니다.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요. 능력 넘치는 팀원들과 협업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그 자원을 기반으로 교육을 하는 것에 늘 짜릿함을 느끼지요. 얼마나 일을 좋아하면, 다른 것도 아닌 일을 디자인 하는 회사를 차려서 연구까지 하겠어요. ^^ 그런데 이런 저에 일에 대한 사랑과 가치를 새로 태어난 아기가 조용히 공격을 하면서, 저의 마음이 두 갈래로 나누어 분쟁을 시작합니다.
‘지금은 일을 다 내려놓고 아이만을 바라보는 시간어야만 한다. vs 아니다 꼭 그럴필요가 없다.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었다면, 뭐 굳이 일을 놓을 필요가 없다.’
고민 끝에, 친구들에게 상의를 해보았어요. 한 친구는 이야기를 쭉 듣더니, 걱정스런 눈빛으로 일 중독 초기 증상이라며, 금단현상(?)을 느끼더라도 완벽히 일을 끊고 이 참에 잠깐 이나마 집안일과 육아에 전념을 해보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다른 친구는 앞선 친구의 조언에 쿨하게 코 웃음치며 이야기 해주었어요.’쟈스민, 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석봉이 어머님이 될 수 없어. 차라리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시간을 쪼개서 자꾸 움직여. 일도 하고, 고객도 만나고, 뭐 컨디션이 되면 강의도 나가.’
누가 일을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참여하지 않으면 큰 사단이 날 만큼 긴급한 일도 없는데 왜 이리 일을 놓지도 그렇다고 잡지도 못하고 있는 것일까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팀원들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한 이타적 마음에 일을 하고 싶어하는것도 맞는 답이지만, 제게 일은 일종의 ‘나를 찾는 거울’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일을 하면서 살아 있다고 느끼는 편이고, 어렵고 복잡한 과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더 많이 자주, 진짜 저를 발견하기도 하거든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를 한 손 품에 안으면서, 아이러니하게 시간을 쪼개 일을 하고 싶다고 느끼는 저의 자아. 지난 50일 동안 곰곰히 지켜보며 여러 조언을 조합해 보니, 꼭 흑백논리로 저를 재단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팀원들의 배려를 받으면서 최대한 아이와의 시간을 즐겁게 갖지만, 저 역시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와 일에는 마음을 편히 먹고 적극적으로 해보기로 했어요. 육아와 일 사이의 균형 사이에서 오는 불필요한 죄책감, 부담감을 더 편하게 내려 놓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더 수월히 할 수 있도록 지금 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남편의 도움을 요구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공을 혼자서 돌릴 수 없고, 남편과 저 우리 모두는 양육과 경제활동의 동등한 책임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아이를 갖는 다는 것, 새로운 생명을 내 인생에 초대한 다는 것은 이렇게 기존의 가치들을 돌이켜 보고, 치환하고 또는 조합하는 일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앞으로 아이가 커가면서, 더 많은 고민과 부딪힘 그리고 새로운 결정들을 내려야 할 날들이 많겠지요? 엄마로 맞게 되는 그런 모든 챌린지를 더 적극적으로 용기 있게 끌어 안고 성장해 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떠실까요? 혹시 선배 워킹맘이 있으시다면, 초보엄마인 제게 나누어 주실 생각이나 팁이 있으신지요? 🙂
저는 이제 이 뉴스레터 메일을 마무리 하고 조만간 잠에서 깨서 저를 찾을 아기, 루나를 위해 미리 몸과 마음을 준비해 두어야겠어요. 음..오늘도 새벽 수유로 긴 밤이 될 것 같네요.
육아와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세상의 모든 워킹맘을 응원하며! 🙂
Be Wodian,
Jas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