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곳마다 기분 좋은 캐롤이 들리는 시즌입니다. 곳곳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도 한껏 연말 분위기를 돋구고요. 여러분의 12월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네요. 최근 함박눈 소식도 많이 들리던데, 소복히 내리는 눈과 함께 설레이는 마음으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계신가요? 🙂 제가 있는 싱가포르는 계절의 구별이 딱히 없는, 연중 평균 기온 27도의 (사실 1년 내내 여름인) 더운 날씨뿐이라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더 먼 이야기로 들리기만하는데요.
싱가포르에 온지 8년이 지난 지금은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강렬한 태양, 또 그 태양과 경쟁이라도하듯 더 화려화게 치장한 오차드 거리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자연스럽게 함께 그려지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때만해도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듣는 캐롤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어요. 한번도 생각해본적도 없는 이 상황이 장난처럼 느껴졌었지요. 산타 할아버지를 간절히 기다리던 어린 시절부터 저에게 겨울은 따뜻한 입김으로 손을 녹여야하는 추운 날씨와 하얀 눈, 크리스마스가 있는 계절이었잖아요.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루돌프 썰매를 타고 오는 산타 할아버지, 따뜻한 벽난로 앞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제가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의 장면이었고요. 다른것이 있을수도 있다는 상상의 여지조차도 없이 평생 이것이 겨울이고, 크리스마스다-라고 알고 살았는데, 눈앞에 펼쳐진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이국적이기도, 비현실적이기도 한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연말에 큰 쇼핑몰 앞 광장에는 함박눈같은 하얀 비누거품을 잔뜩 풀어놓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마련해 주기도 하는데요. 온몸에 거품을 묻히고 깔깔 웃으며 친구들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는것도 참 신기했더랬죠. 눈을 보지 못한,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겨울은, 또 크리스마스는 이런 모습이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이때의 생각이 일을 하는데 있어 저의 관점의 변화에 도움을 주었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이전 회사에서 업무상 다양한 나라, 팀, 그리고 사람들과 일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요. 백명의 사람이 모이면 백명 모두가 개개인이 가진 배경과 경험치에 따라 전혀 다른 관점과 의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운 기회였어요.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점들이 많아 힘들기도 했습니다. ‘같은 목적을 달성하고자 모였는데 왜 이렇게 모두 각자의 이야기만 할까? A가 좋다는 것이 입증되었는데 왜 믿고 따라오지 않을까? 왜 이걸 모르지? 왜 저렇게 생각할까?’ 타이트한 시간 안에 해야하는 일들이 산더미같은데 내부 사람들까지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려니, 조급해지는 마음에 그들이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왜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지 답답한 마음만 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이 ‘한여름의 크리스마스’가 떠오르더라고요. ‘내가 생각하는 겨울의 모습과 그들의 겨울은 다를수도 있겠다.. 같은 주제를 이야기 하지만 서로 다른 그림을 보며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상대방이 경험해보지 못한, 심지어 생각해보지도 않은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이해하지 못한다고 너무 몰아부쳤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름의 크리스마스와 눈이 펑펑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그 시작부터가 다른데 말이에요. 크리스마스에 왜 야자수와 시원한 맥주를 이야기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한번도 눈을 만져본적이 없는 아이에게 겨울 그림에 왜 눈을 그리지 않느냐고 나무라는것과 다를 것이 없었지요. 반대로 그들은 나의 크리스마스 그림을 이해할 수 없었을거구요. 불변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자연현상인 계절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방법도 이렇게나 다른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고, 내 방식대로 해석하여 나온 각자의 정보야말로 천차만별이겠지요. 책임, 성실, 친절같은 단어를 이해하고 정의하는 방법, 기쁨, 슬픔, 노여움을 느끼는 방법도 다 다를테니, 처음부터 상대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거라고 믿는것부터가 잘못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깐 이런 생각을 했다는것만으로 의견 차이와 갈등이 없어졌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의견 차이가 어디에서부터 출발했는지를 헤아려보려는 태도만으로도 마음이 좀 편안해졌습니다. ‘내가 경험한것, 내가 알고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항상 옳은것이 아니다, 상대방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 상황을 보고있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되었거든요. 이해력의 부족도, 이해하고자하는 그들의 노력의 부족도 아니라, 우리는 서로 다른 그림을 보고 있다는것. 각자의 그림이 다르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다름의 차이를 좁혀나가는 것이 내가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니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해야할지 분명해지고, 그 안에서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감정 소모를 할 필요도 없어졌고요. 또 동료들은 그렇게 일을 접근하고 처리해나가는 저에게 편안함을 느끼고 믿음을 더 주었고, 궁극적으로 하나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되니 일의 결과도 좋았습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때문에 답답하고 힘드신가요? 숨을 고르고 한번만 더 생각해주세요. 상대방은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나라에서 왔을지도 모른다는것을요! 🙂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여러분!
Be Wodian,
Jinn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