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근무했던 직장을 뒤로하고 이제 남편은 새로운 직장에 입사하기 위해 내일 시드니로 떠납니다. 언젠가 남편의 워크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레터를 썼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렇게 남편은 원하던 대로 호주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아기는 한국에서 한달 정도를 더 머무르고, 저희가 한국에서 보낸 짐들이 시드니 항구에 도착할 쯤인 4월 초에 떠날 예정입니다.
새로운 나라에서 또 터를 만들고 사람들을 사귀고 일을 시작하게 될 우리. 그래서 그런 걸까요? 요즘에 같이 앉기만 하면 지속적으로 서로에게 묻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 잘 할 수 있을까?’ 입니다. 물음의 특징은 질문하는 사람이 누구이던지 간에 사실 대답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지요. 제가 묻기도 하고, 남편이 묻기도 하지만 늘 대답해 주는 사람은 한결같이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그럼, 잘 할 수 있을 거야!’ 라고 이야기 한답니다. 외국에서 일을 하고 공부도 해보았으니 뭐 두려울게 있을까 싶다가도 또 새로운 환경에서 만날 ‘낯설음’이 얼마나 생경하게 다가올까 마음을 졸여보기도 합니다.
이런 질문이 식상해진 며칠 전 저녁, 남편에게 제가 먼저 물어보았습니다. 20대로 다시 돌아가, 원하는 잡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은지 말이지요. 늘 그렇듯 남편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이렇게 이야기 하네요.
‘나는 사실 정말 경찰관이나 군인이 되고 싶었는데 말이지..’
남편의 큰 형은 대학을 가지 않고, 우리로 치면 ‘해군 사관학교’를 들어가 해군이 되었습니다. 가끔씩 형이 들려주는 훈련이야기, 군인으로써의 자부심 같은 것을 이야기 하면 남편은 늘 부러운 눈으로 형을 바라보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쯤에 해군 사관학교와 한 대학교에서 동시에 입학 허가를 받았더랍니다. 둘다 괜찮은 장학금을 주는 조건이어서 더 망설였는데, 남편은 결국 경영학을 전공하는 대학교를 선택을 했고, 그 이후 대학을 졸업해서 회사에 입사한 뒤 한번도 쉬지 않고 꾸준히 일을 했습니다.
‘순간의 선택’으로 바다로 가지 않고 육지에서 사는 회사원이 된 남편은 늘 그때 19살의 선택을 아쉬워 (?) 합니다. 물론 What if, 그때 그 선택을 했었더라면.. 이란 아쉬움을 허공에 그릴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도 못 만났고 우리 아기도 없는데?’ 라고 알람을 주면 그 꿈에서 깨기도 하지만요.
‘근데 있자나, (과거의) 꿈을 놓치면 이루기가 힘들 것일까?’
남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남편은 그리하다고 대답하네요.
우리가 선택하지 못한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정말 크다면, 그 선택을 다시 내 인생에 불러 올수는 없는지 궁금해 졌어요. 그리고 남편에게 이야기 해주었지요.
‘내가 당신의 일을 디자인 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의 본업을 유지하면서 ‘아쉬움을 달랠 방법’을 분명 찾아내려고 노력할거야. 경찰관이 왜 되고 싶었고, 왜 군인이 되고 싶었을까? 국가와 시민을 위한 봉사심으로 시작한 것일까? 아니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과 정신이 바탕이 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콘크리트 빌딩 안에서 일하는게 아니라 현장을 뛰어 다녀야 하는 일의 성격 때문일까? 나라면 그냥 막연한 과거의 동경심으로 접어두지 않고, 정말 과거를 그리워 하는 이유를 최대한 찾아보고, 그 일과 비슷한 성격의 것들을 봉사, 취미, 심지어 부업으로라도 시작해 볼 것 같아. 그리고 10년 넘게 일한 당신의 경력을 Blend in (잘 섞어서) 당신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특이한 일로 다시 포장할 것 같아.”
제 이야기를 듣더니 남편의 눈이 반짝입니다. 놓친 기회를 매번 아쉬워만 했지, 그 기회에 대한 애정을 품은 이유를 분석해 ‘유사한 일’을 만들어 보거나 도전해 볼 생각은 못했다고 하네요. 시드니에 가면 이 아이디어를 잘 찾아서 무언가를 더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 하니 어디 두고 봐야 겠습니다.
제 남편의 이야기인것 같지만 사실 비슷한 이야기를 주변에서 참 많이 들었어요. 특히 ‘재주가 남다른’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제게 많이 해주셨습니다. ‘ 나에게 이러이러한 재주가 있었으나, 여러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니 좀 아쉽다. 그때 그 재주를 그대로 단련했다면 어떠했을까?’ 이런 이야기, 여러분도 주변에서 많이 들어보셨지요?
일을 바라볼때 우리는 사실 ‘모 아니면 도’의 가치관과 관점으로 선택지를 결정하곤 합니다. ‘재주가 있었다 해도 직업과 관련있으면 소용이 없다.’ 혹은 ‘ 이 직무는 맞지 않으니 완전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 라고 말이지요. 저 역시 두개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서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을때가 있었지요. 마치 하늘 아래 두개의 태양은 존재 할 수 없듯이, 나를 규정하는 것은 오롯이 하나의 일이라고요.
그러나 이제 저는 다르게 믿게 되었습니다. 직업들은 점점 더 경계를 풀고 있고, 일을 하는 장소, 시간, 방법등도 셀수 없이 다양해 지고 있으니까요. 이제는 직업과 직업을 서로 이어 붙일 수도 있고, 그 직업 사이의 문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은 단단한 대나무가 아니라 실리콘 같이 유연하고 탄력적일 수 있다고 말이지요. 직업과 직업이 만나 서로 이야기를 하고, 시너지를 내고 그러면서 그 섞어진 직업이 나의 다른 정체성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직업적 창의력이라고 생각해요. 경찰은 못 되었어도, 경찰의 속성을 지닌 새로운 일을 충분히 찾을 수 있고,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남편에게 이야기 한 것 처럼요.
한 달뒤 시드니로 아기를 안고 가는 저는 또 어떤 일들을 만나게 될까요. 엄마로서의 일. 그리고 교육과 코칭을 하는 전문가로 호주라는 땅에서 저는 또 어떤 도전들을 만나게 될지요. 지금까지 지나왔던 저의 직업의 문과 앞으로 만날 미래의 문을 잘 만나게 해보고 싶어요. 그것이 제가 올해 열심으로 하게 될, 2018년 저의 워크디자인의 과제가 되겠네요.
올해 여러분의 직업이 또 다른 문을 만나 아름답게 연결 되길 빕니다. 그리고 오늘의 레터가 두 직업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 특히 새로운 일과의 접점을 찾으려는 분들에게 작은 용기가 되드리길 바래봅니다. :^)
Be Wodian,
Jas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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