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오늘은 짧은 설문으로 뉴스레터를 시작 해볼까요? 아래 증상 중에 여러분은 몇개의 증상을 가지고 계신지요?
– 불안함이나 긴장, 초조감
– 쉽게 피로해지는 상태
– 집중하기 힘들거나 멍해지는 것
– 짜증을 잘 내는 것
– 근육 긴장
– 수면 장애
혹시 위의 증상을 하나씩 읽으며 ‘어라, 오늘 나의 컨디션인데?’ 하는 분 계실까요?
이 내용은 ‘정신 장애의 진단과 통계 메뉴얼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흔히 DSM, 각종 정신질환을 진단하는 세계적인 기준) 에 따른 여섯가지 증상입니다. 보통 세가지 이상의 증상이 오랫동안 나타날 경우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저요? 저는 이 설문을 보자마자 저의 모든 상태를 하나 하나 다 나타내주는 ‘친절한 설명 도구’로 생각했답니다. ^^;
한 심리학 실험에서 피 실험자들은 실험에 참가하고 이 불안장애 환자들과 똑같은 증상을 호소했습니다. 평소에는 위의 증세를 보이지 않다가, 실험에 참여하고 나서 ‘긴장되고 적대적이며 화가 나고 짜증이 많아졌다.’ 짜증을 잘 내고 불안하며 집중력이 떨어졌다’ 혹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마음이 내키지 않으며 불안하고 방어적’ 이라고 이야기를 했답니다. 심지어 정신상태가 혼미해진 나머지 벽에 부딪쳐서 안경을 깨뜨린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도대체 심리학자는 이 피실험자들에게 무슨 개입을 한 것이길래,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불안과 우울증을 느낀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삶에서 좋아하는 일 (몰입을 할 수 있는 대상)을 축출’ 시킨 것 이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운동을 하지 않아야 했고, 직장 업무를 좋아하며 즐기던 사람은 그 일을 중단해야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소소한 설겆이를 하면서 시간을 즐기던 한 여성은 그 ‘좋아하던 설겆이’ 마저(!) 할 수 없게된 실험이었지요. 이 실험결과는 거의 즉각적으로 나타났고, 첫번째 날이 끝나고 참여자들은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거나 잠을 잘 수도 없는 사람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참여자들 대부분이 위의 정신 장애 상태의 증상들을 보여서 결국 이 실험은 총 48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야 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 축출 실험’은 그렇게 이틀만에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 실험을 보면서 저는 지난 9개월간의 저의 증상을 그제서야 완벽히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체 산모의 85%가 겪는다는 산후 우울증을 저 역시도 겪었고, 그 우울의 증상은 사실 위의 불안증상과 상당히 유사했었지요. 호르몬의 영향으로 시간이 가면 자연스레 없어진다는 그 우울감 증상을 저는 꽤 오랫동안, 아니 지금도 겪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우울감을 특별히 탈출할 방법을 몰라, 그저 그런 감정을 포기하며 받아들인지 몇개월이 지났어요. 그런데 책에서 이 실험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제가 힘들어 하고 우울해 했던 것은 단순히 ‘여성 호르몬’의 문제만은 아니었던것 같아요. 제가 임신 전에 아주 좋아했던 ‘그 몰입의 시간’이 위의 실험의 참여자에게 축출된 것 처럼 제게도 그렇게 한 부분이 소멸 되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별것 아닌데 얼마전까지, 제가 참 좋아했던 ‘몰입의 순간’은 이런 내용입니다.
” 혼자서 카페를 찾아서 따뜻한 라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커피를 기다리고, 커피를 받아 다시 테이블로 돌아오면 최근에 고민했던 아이디어들을 컴퓨터에 정리하고 키워드 별로 교육의 내용을 정리합니다. 교육을 디자인하는 사람이지만 가끔 학생의 입장에서 이 교육이 어떻게 보일까, 들릴까, 느껴질까를 생각해 보고 관련 도서, 자료들을 찾아 내용을 뒷받침 해봅니다. 그리고 디자인한 내용을 대표할 만한 영어 이니셜을 생각해 내요. 예를 들면 저희가 교육하고 있는 3R. Reflection, Resilience, Renaissance 혹은 4S 같은 키워드들을 그렇게 정리해 보는 것이지요. 몇시간 동안 내용이 정리되고 그에 알맞는 영문 키워드까지 딱 조합이 되면, 그날은 아주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됩니다. 자기 전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요. 와, 오늘은 정말 즐겁고 뿌듯한 날이었어!”
생각해보니 이런 작업은 제게 일이자, 하나의 놀이이고, 또 저를 살아있게 느끼는 중요한 시간이었네요. 칙센트 미하이가 말한 업무 중에 자기 목적을 경험할 수 있는 구조 (분명한 목표, 즉각적인 피드백, 자신의 능력과 조화를 이루는 ‘적당히 힘드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은’ 도전)와도 맞물려 있기도 하고요. 스스로에게 지리한 일을 오랫동안 하도록 강요하게 되면 번아웃이 오거나 무기력감에 빠지지만, 자신을 독려하고 돋구는 일을 하게 되면 미하이 교수님이 말하는 ‘몰입’을 느껴 오히려 다시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지요. 좋아하고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굴이 활짝 피는 이유가 멀리 있지 않았어요. 그렇게 몰입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실제 이행하는 것,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자신의 독려해 움직이는 것은 우리의 삶의 필수적인 산소 호흡기 같은 것이겠네요.
제가 우울해 하거나 불안해 하면 또 호르몬의 증상이겠거니 하며 저를 조용히 피하던 남편에게 이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요청했지요. 최대한 저를 다시 그 장소에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내 삶의 큰 부분이었던 그 즐거움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응원해 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남편의 몰입의 장소와 시간을 최대한 배려해 주는 아내가 되겠다고 약속도 했답니다.
이번 주말, 몰입을 할 수 있는 대상을 다시 초대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혹시 아직 본인에게 맞는 그 몰입이 무엇인지 모르시겠다면, 제가 불문학도였을때 이 책을 읽고 심리학의 매력에 푹 빠져 전공과 진로까지 바꾼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을 추천해 드립니다. 읽어보신 분들도 다시 훑어보시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몰입의 멋진 정의, 자기 목적성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아시게 되면, 우리의 일과 삶의 즐거움을 더 가깝게 보실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
우리의 그 아름다운 몰입을 응원하며!
Be wodian,
Jas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