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것 같이 맹렬했던 폭염의 여름이 고비를 넘긴 듯합니다. 밤마다 에어컨을 몇 도로 해 놓고 취침에 들어야 할지 고민되던 나날이었는데, 어제는 창문 열고 선풍기만으로도 선선한 하루였습니다. 다음 계절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나 봅니다. 워디 독자분들은 이번 여름 어떻게 잘 넘기고 계시는지요?
얼마 전, 친한 동생과 커피 한 잔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나름 괜찮은 스타트업에서 좋은 팀원들과 무리 없이 진행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출퇴근도 비교적 자유로워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재택근무고 가능하며,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이 볼 때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직장생활이지만, 그녀의 고민은 직장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한참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고, 다른 팀원들은 모두가 만족하며 다니는 데 내가 이상한 건가, 이직을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복잡한 마음의 고민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많이 겪어 본 것 같습니다. 모두가 좋다고 하는데 나는 그 직장에서 행복하지 않아서 어려웠던 경험도 있었고, 혹은 반대로 다들 힘들어하는데 나는 견딜만했던 오히려 즐겁기까지 했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오는 걸까요? 직장에서 행복해지는 데에는 어떤 방정식이 있는 것일까요?
혹시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여기 제가 힌트를 얻었던 두 가지 연구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예일대학교의 에이미 브레즈니브스키(Amy Wrzesniewski)는 일을 만족스러워하는 사람과 불만족스러워하는 사람의 차이는 각자가 가진의 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합니다. 에이미는 인식하는 방식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생업 인식’과 ‘출세 인식’과 ‘소명의식’입니다.
‘생업 인식’을 가진 사람은 말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월급을 받기 위해 출근을 하는 이들은 매일 자신이 하는 일에 특별한 기대가 없으며, 그 일을 친구에게 권하지 않고, 근무가 끝나기만을 고대합니다. 여가생활이 더 중요하며 월급이 일의 동기가 되고 지시받은 일을 합니다.
‘출세 인식’은 일을 존경이나 지위, 많은 돈 등 더 나은 어떤 것을 얻기 위한 디딤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일의 어떤 면은 좋아하지만 다른 면은 안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전형적으로 승진, 인맥 형성, 연봉 인상, 관리 권한의 증가, 더 큰 사무실, 더 가까운 주차공간, 사회적 지위의 상승 등이 일의 동기부여가 됩니다. 그들은 상사의 눈에 들기 위해 솔선해 일하며, 승진 가능성 때문에 열심히 일합니다.
마지막 ‘소명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대단히 중요하고, 그 일이 세상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머지 “돈을 받지 않더라도 이 일을 할 거야”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은 일중독자가 아니라 자신의 일에 신념을 가진 열정적인 사람으로, 일상적인 업무에서 흥분과 도전을 느낍니다. 일이 보람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게 됩니다.
사람의 일에 대한 동기는 여러 가지 욕구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저도 한 가지 카테고리의 사고방식으로만 일하고 있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나의 일이 ‘생업-출세-소명’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있다면 어느 즈음에 있다고 점을 찍어 설명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에이미는 누구나 소명 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보다 큰 비전에 자신의 직업을 맞추기 위해 일터에서 작은 변화를 시도해보라고 격려하기도 합니다. 나는 지금의 나의 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가능하면 나의 일을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소명 인식으로 관점을 바꾸는 것이 일터에서의 즐거움을 되찾는 힌트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일 자체는 어떨까요? 업무 자체가 행복을 증진할 가능성이 높은 일과 행복에서 멀어지게 하는 일이 있는 것일까요? 아무리 소명 인식을 가져보려고 해도 안 되는 업무를 하고 있다면?
모든 유형의 일이 모든 사람에게 다 맞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일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나의 재능을 활용하고 흥미로우면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i Csikszentmihalyi)의 연구에서 두 번째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일의 안녕감을 위해서는 적당한 도전이 주어져야 합니다. 정도를 넘어서면 불안하고, 너무 약하면 지루합니다. 하지만 그 도전이 적절해서 나의 기술 수준과 맞아떨어진다면 ‘몰입’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일에 흠뻑 빠져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는 행복한 상태입니다. 미하이는 많은 사람들의 관찰을 통해 몰입할 수 있는 쾌적한 상태를 하나의 도표로 나타내었습니다.
일이 주는 도전과 그 사람의 기술이 서로 맞으면 활동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치 세상에 아무도 없는 듯 사로잡히게 됩니다. 일을 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은 몰입 상태에 가장 먼저 도달하게 됩니다. 그들은 도전, 숙달, 성장을 계속해서 경험해 나갑니다. 대개의 경우, 몰입을 체험하려면 자신의 재능을 알고, 그것을 활용할 기회를 찾고, 기술이 발전하면 점점 더 도전적인 과제를 택해야 합니다.
일로 고민하던 그녀는 저와의 대화 가운데 얼마 전 이러한 상태를 우연히 직장에서 체험한 것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얼마 전 조직의 정비를 하면서 그동안 해 오던 마케팅 업무에서 회계 업무로 전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이전 조직이었던 이커머스 회사에서 마케팅/광고를 담당여 관련 경험을 그녀의 씨앗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취업활동을 하기 전에는 회계사를 준비하며 관련 지식 또한 그녀의 씨앗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마케팅의 씨앗을 크게 사서 그 분야의 일을 맡게 되었는데, 이전 조직에서보다 규모도 작고 덜 복잡한, 즉 너무 쉬운 도전이 그녀에게 업무에서의 권태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회사 규모가 점점 커지게 되면서 경리/회계를 전담하여 정리해야 할 시기가 왔는데, 회계사 공부를 했던 그녀가 급하게 맡게 된 것입니다. 아직 업무를 파악하는 중이기는 하지만, 며칠 전에 회사의 지난 몇 년간의 장부를 보고 정리하며 엑셀을 만지는데(더 정확히는 수식을 넣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을 새워서 완료하여 대표님께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인식하지 못했겠지만, 업무에서 아주 제대로 ‘몰입’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녀와 헤어지면서, 앞으로 조직의 살림을 맡아서 해 나가면 좋지 않겠냐며 권유해 보았습니다. 조직에서도 기꺼이 즐겁게 업무 하는 직원이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다가 그녀의 업무를 포함한 이 모든 일이 조금 더 소명으로 인식된다면, 비로소 그녀도 직장에서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워디 독자 분들은 어떠신가요? 지금의 일을 어떻게 인식하고 계시나요? 업무 안에서는 기술과 도전이 조화를 이루어 몰입을 느끼고 계시는 상황이신지요? 이 레터가 저와 그녀처럼 직장에서의 행복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혹시 또 다른 힌트를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저희에게도 나누어 주시길 부탁드릴게요. ^^
아직 남은 여름, 건강 조심하시길 바라며.
Be wodian,
Ell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