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부부들은 정확히 어떤지 잘 모르지만, 저희 부부는 일년에 한두번 아주 크게 싸웁니다. 이 싸움은 태풍과 같아서 가끔씩 세력이 약해져 존재를 정확히 인지 못할 정도로 미약하기도 하지만, 마음의 방파제가 별로 단단하지 않을때 이 태풍을 만나 후두둑 여기저기 상처입고 무너질때도 있답니다. 평소에는 말다툼도 잘 안하고 얼굴 붉힐일도 없는 우리 부부는, 이상하게 이 태풍 앞에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습니다. 연애를 시작하고 일년, 이년 후 쯤에 이런 태풍을 한번 만났는데, 우리 둘다 아주 깜짝 놀랐지요. 맞아요. 우리는 겉으로는 아주 유한 사람이지만, 양보하지 않겠다 마음먹으면 아주 독한 사람들이 되는 부류였던 겁니다. (넵, 둘다 그래요)
일주일 전쯤, 그 태풍이 저희가 사는 이 시드니를 강타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드니 서쪽에 있는 우리집을 강타한것이지요. 잠잠하고 고요한 거실과 부엌에 갑자기 언성이 높아진 목소리가 왔다갔다 했고, 서로의 논지의 오류를 잡는 말대꾸의 시간이 꽤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기억력이 좋은 편인 저는 남편이 이야기 하는 것 중에 틀린 부분을 정확히 짚어냈지만 남편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방어하고.. 우리는 그 대화로 여기저기 실망하고 상처를 입었답니다.
왜, 어떻게 시작된 논쟁인지 기억도 가물하지만, 보이지 않는 선으로 그어진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맞네, 당신이 틀렸네’를 수도없이 반복하다가 둘다 모두 제풀에 지쳐서 대화가 흐지부지 해질 쯤 물을 끓여 각자 차 한잔을 마십니다. 그리고 열번 중 한 일곱번, 남편이 먼저 미안하다고 해서 태풍의 세력을 완전히 소멸시키지요. 번개와 비로 흠뻑 젖어 몰골이 말이 아닌 우리는 조용히 마시는 따뜻한 차 한잔에 그날의 대화와 우리의 모습을 비춰봅니다. 늘 그렇듯, 우리 둘다에게 잘못이 있고, 우리 둘다 고쳐야 하는 점이 있습니다. 대화의 끝, 그 조용한 시간에 저는 남편에 대한 설정값을 수정하고 남편은 저에대한 설정값을 수정합니다. 다시한번 우리 부부의 관계를 섬세하게 조율하고 고쳐나가기로 다짐하면서요.
그러고 보면, 이런 태풍을 우리모두는 자주 여기저기서 자주 만나는것 같아요. 비단 부부관계 뿐 아니라 일을 만들어 가는 동안에서도요. 어떤 일을 진행할때, ‘생각보다 잘 진행 되지 않을때’ 우리는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받게 되지요. 내가 그린 항로로 비행기가 쭉 날아주기를 기대하면서 설정값을 만드는데, 사실 일이란게 그렇게 ‘설정값 그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별로 없잖아요. 어디선가 이탈 경로가 분명 생겨납니다. 팀원 중에 누가 갑자기 빠지거나, 기술적인 문제가 예상하지 못하게 나타나거나, 갑자기 자금이 풀리지 않아 지급이 어렵게 되거나, 가족이 아프거나, 빵빵했던 풍선과 같았던 나의 기대와 동기가 어느순간 바람 빠지듯 사라지면 우리는 당황하게 되지요. 이럴때, 이런 태풍을 만나서 흔들리는 길 앞에서 우리는 기존의 설정값을 버리고 혹은 교정해 얼른 ‘수정값’으로 계획과 일을 다시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왜 고치고 수정하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하는가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각각의 수정을 ‘계획상의 실수’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첫번째로 만든 계획과 설정값이 옳지 않거나 수정되어야 하는 상황이 올때, 매우 유감스러워 하면서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첫번째 플랜이 맞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고 어떤 계획도 완벽할 수 없다고 믿고 다시 일어나면 되는데, 그것이 사실 말처럼 그리 쉽지 않지요. 수정값을 구하면서 스스로 자꾸 불필요한 자책을 하기 때문이지요. ‘왜 그것을 못 봤을까, 왜 그것을 예상 못했을까’ 하는 질문을 가지고요.
완벽한 설정을 버리고 자주 수정하고 고쳐보겠다고 마음 먹는 것은 저희가 교육하는 워크 디자인의 핵심 근력이기도 합니다.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가능성을 확장시켜가는데 사실 ‘완벽한 설정, 가정’ 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요. ‘뭐든 부딪히며 해봐야 안다’ 라는 교육의 목표는 ‘해봐서 아니면 다른 것을 하면 된다, 다시 다른 계획을 세우면 된다.’로 재해석 될 수 있기도 하고요.
남편이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 라는 완벽한 설정값을 셋팅해 두고 거대한 태풍에 쫄딱 젖은 제가 지난 며칠 고민하면서 얻게된 깨달음인데, 혹시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도움이 되어 드렸으면 좋겠어요. 이미 그려둔 설정에 꼭 맞지 않아서 뭔가 마음이 불편했던 분들에게도 인생의 많은 부분은 특히 일은 ‘수정가능’ 한 부분이 많다고 다시 용기를 내어보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요.
(사실 이 글은 새로운 프로젝트로 분투노력하고 있는 그레이스를 위해 썼어요. 멀리서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는데, 오늘의 이 글로 용기를 한줌 보내줄 수 있음 정말 좋겠네요! ^^)
가을이 다가옵니다. 시드니에 봄이 오는 것처럼요.
새로운 계절, 수많은 설정과 수정 사이에서 뛸 우리 모두를 위해 화이팅 합니다!
Be wodian,
Jas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