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정도에 남편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그 전화를 건 사람은 예전 싱가포르에서 같이 일했던 보스였어요. 서로의 안부를 묻고, 몇 분뒤에 그 보스는 남편에게 의외의 제안을 합니다. ‘싱가포르에서 다시 일 해볼 가능성, 승진과 인상된 연봉 협상을 베이스로 받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날 저녁, 같이 식사를 하면서 남편이 그 통화에 대한 내용을 말해줬을때 저의 첫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그러니 있을때 더 잘해주지! 그 보스는 왜 떠난 사람을 보고 뒷북을 칠까, 그치? 말도 안되는 제안이지만, 뭐 당신을 생각해 준게 뭔가 고맙기는 하네.’
그리고 남편의 얼굴을 보니, 뭔가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것 처럼 보였어요. 저는 그 통화가 ‘고맙지만 말도 안되는 조건’ 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뭔가 생각해볼 여지를 두고 싶다는 식의 대화를 둘러둘러 해보려고 하더군요.
‘잠깐만, 그래서 그 전화를 어떻게 끊었어? 고맙지만 가능하지 않다. 이렇게 이야기 했지? 설마 다르게 이야기 했어?’
남편은 한 일분간 침묵을 하더니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응 당신이 이야기 한대로 그렇게 끊기는 했어, 근데 그 보스가 말한 조건이 정말 말도 안되는 조건인지.. 이게 무슨 기회는 아닌지 궁금해지네. 다시 통화해보고 싶은데, 그래도 될지 당신과 상의해 보고 싶어서 이야기 하는거야.’
그날 그 저녁에, 직감적으로 아주 강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어요. 남편의 진짜 얼굴, 진짜 감정, 진짜 소망.
저에게 절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남편은 호주에서 일을 하고 회사를 다니는 지금의 현실에 행복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요.
아내로써 이러한 고민을 하는 남편을 보고 있으니, 저 역시도 많이 혼란스러웠지만 전화 한통으로 당장 무슨 결정이 나는 것도 아니니 일단 마음을 가다듬고 남편에게 심리적 지원을 주기로 결정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다시 그 보스와 통화를 해서 그 통화의 배경과 조건들을 더 묻기로요. 그리고 그 다음날 다시 통화를 통해 모든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전 보스는 어떻게든 남편을 최대한 빨리 싱가포르로 데리고 오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구애를 했고, 그 구애 작전에 남편은 적극적으로 화답했습니다.
남편의 상기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시드니에서 최대한 적응하고 정착하고 살려고 했던 저의 마음도 복잡해졌지요. 다시 싱가포르로 복귀하는 옵션은 우리의 인생에서 가지고 있었던 Plan B도 아니었고, 반년을 보낸 호주에서 이제야 뭔가 맘을 붙이고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던 시간이라 이런 옵션을 고려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부담스럽고 버겁게 느껴졌어요. 팔랑귀 스타일도 아닌 남편이 그 전화 한통으로 이렇게 마음이 뜰 수 있다는 것도 너무도 의외의 일이라, 남편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머리속이 백지장처럼 느껴졌습니다.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어요. 그 전화 이후에 바로 회사 CEO가 남편의 복귀를 허락, 환영했고, HR의 컨펌까지 완료되서 정말 짐만 싸서 넘어가면 되는 듯이 보였습니다. 남편은 승진과 연봉인상등의 조건이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보다 월등하게 낫고, 무엇보다 다시 맡게될 일이 남편에게 새로운 커리어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알 수 없는 변화의 속도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남편의 선택을 믿고, 최종적인 계약서까지 받아 보는 것이었으니 조용히 final call을 기다렸지요.
그런데 내일이면 올것 같이 말하던 계약서가 남편에게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마치 당장 내일이라도 싱가포르로 돌아갈 것 같던 그 흥분이 연기 같이 희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받았습니다. 남편에게 온갖 바람을 다 빵빵하게 넣어주던 그 보스는 낮은 목소리로 남편의 트랜스퍼를 없던 일로 해야 된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내부사정으로 그리 되었고, 미안하게 되었다고. 그래도 지금 다니던 회사에 사직통보는 하지 않았으니 그대로 다니던 회사를 다니면 되는거 아니겠냐고 말이지요.
.
.
.
남편은 그 전화를 받고 약 한달 정도를 괴로워 했던것 같아요.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와 하던 일을 하면 되는 건데, 그렇게 하기가 너무 힘들었겠지요. 그 전화가 아니었으면 아내인 저에게도 진짜 얼굴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을 텐데, 남편의 제 앞에서 연신 부끄럽고 괴롭다는 이야기를 너무 자주 했습니다. 그 전화로 저 역시도 어디에 정착해야 할지 모르는 이방인이 되어 마음이 여기저기 허공을 돌아다녔지요. 괴로워 하고 답답해 하는 남편을 보면서 해줄 수 있는 위로는 ‘이것은 다른 것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이 점이 여기서 끝난다고 생각하지 말자’ 정도 였어요.
점과 점은 단지 이직이나 승진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우리 가족이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그 모든 사건과 사건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죠. 언제가 알게된 이 사건의 진짜 의미. 그 의미를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요. 어디에 살던, 어떤 것을 하던 사실 그것 보다 중요한 것은 시련을 겪을때 붙잡아야 하는 믿음의 손잡이. 그 손잡이를 놓지 않고 잡고 기다리는 것처럼 요.
바람이 잔뜩 들어간 풍선처럼 빵빵하지만 어딘가 위태로웠던 그 제안이 다 거품처럼 지나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묵묵히 일을 하고 아이를 키웠습니다. 일을 열심히 했고,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았어요. 아내로써, 엄마로써, 남편으로써, 아빠로써.. 우리는 그 시간을 에피소드로 여기며 웃을 수 있을 만큼 많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괴로워 하는 남편을 보며, 또 몇배는 괴로워 했던 저도 같이 웃을 수 있을 만큼요.
시인과 촌장의 ‘숲’ 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바로 그런 비슷한 의미가 아닌가 싶어요.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시간이 걸려도 그 숲에서 나와야 지나온 그 숲이 보인다는 그 평범한 진리는 저에게도, 저의 남편에게도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호주 생활에서 안정감을 찾을 무렵..
거짓말처럼 다시 기회가 왔습니다. 섣부르게 들뜨지 않는 것을 배운 남편은 그 기회를 철저히 배움으로 대했습니다. 뛰어가서 잡아야 하는 토끼가 아니라, 같이 관찰하고 이야기 나누면 좋을 정도의 거북이 같은 속도로요.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지겠다는 마음으로 속도를 내던 그런 무모함을 다 내려놓고, 아주 침착하게 아니 어쩌면 답답하게 그 기회와 조용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전에 오퍼 받았던 조건보다 더 월등히 좋은 조건들 이라 오히려 더 마음을 비운 것 같이 보이더군요. 그렇게 남편은 자신의 숲을 걸어 나와 지나온 길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고, 그 기회는 남편 것이 되었습니다.
네, 이 모든 일들이 지난 4-5개월간 저희에게 일어난 일이랍니다. 아직도 뭔가 어리벙벙하고 믿을 수 없고 당황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저희 가족은 다시 싱가포르로 갑니다. 야심차게 안녕하며 싱가포르, 서울을 떠나 이곳에 온지 일년도 되지 않았는데.. 남편의 일을 서포트 해주는 부분이 끝나면 이제 제 차례라며 저도 시드니에서 새로운 준비를 하던 차였는데.. 모든 것을 멈추고 다시 짐을 쌉니다. 호주로 오고 싶다는 남편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준것처럼, 이번에도 싱가포르로 가고 싶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기로 했어요. (그러나 이번에 들어가면 20년은 나올 수 없다는 조항을 붙이기는 했지요..!)
10개월동안 걸었던 이 곳 호주의 숲은 우리 인생에서 어떤 모습이 될지, 출국하는 날 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이 곳을 보면 그때에 정확히 알게 될까요? 우리가 다시 걷게될 싱가포르는 또 어떤 나무들로 가득차 있을까요? 앞으로 만날 그 곳이 군데 군데 파이고 웅덩이가 있고 진흙밭이어도 그 숲, 인생이 지닌 시간의 힘을 이해하며 주어진 기회를 힘껏 안으며 살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그것이 올해, 제가 원하는 2019년의 한해 소망이예요.
어디선가 읽었던 구절, ‘괴로움과 부끄러움이 우리를 가르친다’ 라는 말은 정말 진실이었네요. 우리를 성장시키는 이 두가지 거름이, 인생의 숲을 더 울창하게 만든다는 것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길 바래봅니다.
따뜻하고 즐거운 구정 보내세요!
Be wodian,
Jasmine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내 어린날의 눈물고인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
외롭고 외롭던 숲 내 어린날의 숲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내 어린날의 슬픔고인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
어둡고 어둡던 숲 내 젊은 날의 숲
-시인과 촌장,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