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하고 제법 많은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워디 독자분들은 어떻게 1월을 보내고 계시나요?
예전에는 지나간 해를 되짚어보고 정리하며, 고심해서 올해의 다이어리를 사고 어마어마한 새해 목표를 정해서 적어두기도 하면서 다소 거창하게 새해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평소보다 더 바쁘게 지나가는 연말 연시라서인지,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작심삼일이 되는 수년간의 경험 때문일까요, 요 근래는 새삼스럽지 않게 보내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개인적으로 더 작년을 되돌아보게 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바로 매년 1월 이때 즈음 찾아오는 연말정산 기간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라면 모두 이 시기에 숫자로 나타나는 작년 한 해의 기록들을 확인하고, 제출해야 합니다. 요즘에는 홈텍스에서 간소화된 서비스로 쉽게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각 항목 별의 숫자를 보면 ‘내가 여기에 이렇게나 썼구나!’ 하며 작년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갑니다. 직장인의 13월 월급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연말정산은 환급받을 때는 보너스처럼 느껴지지만, ‘뱉어내야’할 때면 조금 속이 쓰리기도 합니다. 물론 1년 동안 차곡차곡 냈던 세금과 소비에 따라 ‘정산’하는 개념이긴 하지만, 어쩐지 관련된 성적표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은 저뿐인지요. 어찌 되었든 이 성적표에 따라 ‘귀찮아도 현금영수증 처리는 꼭 해야지’, ‘체크카드와 신용카드의 사용 비율을 이렇게 이렇게 조정해야지’등 저의 금융 생활 지침을 조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연말정산 자료를 준비하다 보니, 내가 벌어들이고 낸 비용에 대한 정산이 아니라, 이렇게 벌고 낼 수 있도록 한 ‘나의 일’에 대해서도 연말정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작년 한 해동안 여러 사건들이 있었고 그 안에서 업 앤 다운을 겪으며 그래도 무탈하게 오늘까지 올 수 있었는데요, 여유 있는 듯 치열하게, 걱정과 으쌰으쌰 힘내기를 반복한 일 안에서의 나에 대하여 워디랩스에서 배운 팁으로 연말정산을 해볼까 합니다.
가장 먼저 필요한 자료는 ‘2018, 나의 일의 얼굴 초상화’입니다. 이전에 워디레터를 통해서 소개드린 바 있는 데요, 워디랩스의 워크숍에 참여하셨던 분들은 해 본 적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보통 일로 인해 울고 웃는 나의 모습은 잘 알고 있는데요, 그렇게 울고 웃게 만드는 나의 일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그려봅니다. 나와 일의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요, 그냥 느낌적인 느낌으로 나의 일이 어떻게 생겨먹었을지, 상상력을 발휘해서 부담 없이 그려보는 작업입니다. 마침 지난 수첩을 열어보니 계절마다 한 번씩 그려왔던 저의 일의 초상화가 있었습니다.
작년 늦겨울에 그린 저의 일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어서 와’하고 활짝 웃어주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잔뜩 해주기를 바라는 상기된 눈빛이 약간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던 저의 일은 봄 즈음에 ‘왜?’ 하는 눈으로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일이 많이 있었던 당시에는 마음속으로 걱정과 우려가 많아 부들부들 떨고 있었나 봅니다. 저는 무언가 대답을 바라며 저를 보고 있는 일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있네요. 가을이 지나 다시 그려보았던 저의 일은 저를 팔 안에 두고 웃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저는 뽈뽈뽈 땀을 흘리고 있네요. 몇 개의 큰 프로젝트를 앞에 두고 있어서였을까요, 일이 거인처럼 크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일의 팔 안에서 도망가지는 않고 일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인 이번 겨울 들어서 그린 저의 일의 초상화는 일이 발이 보이지 않게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머리까지 질끈 동여 메고 두 팔을 휘휘 저으며 땀을 뻘뻘 흘리는 저의 일은 함께 달려주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2018년을 되짚어보며 생각했을 때, 저의 일의 대표 초상화는 마지막 달리기 하는 얼굴이 아닐까 싶습니다.(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심리적으로 저에게 일이 친근하게 느껴질 때에는 머리카락이 있는데, 조금 무서울 때에는 민머리네요!)
워디 독자분들의 ‘2018년 나의 일의 얼굴 초상화’는 어떤 모습인지요? 어떤 표정의 어떤 얼굴이든지 상관없습니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일의 초상화를 그려보신다면, 어떤 얼굴을 대표 작품으로 선정될지요? 지금 혹시 근처에 펜과 메모지가 있다면(냅킨이어도 좋습니다), 한 번 재미 삼아 쓱쓱 그려보시면 어떨까요? 만약 그리기 어려운 상황이시라면, 머릿속으로 상상해보셔도 좋습니다. 만약 그 초상화에 제목이 있다면 어떻게 정하시겠어요?
각자의 일의 얼굴이 그렇게 생긴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워디랩스에서는 크게는 내가 매일 하고 있는 일의 업무(Position), 분야(Field), 조직 문화(Culture), 그리고 영향을 주는 사람(People)으로 인해 그런 모습을 하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각각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기를 권합니다. 작년 한 해 항목별로 구체적으로 어떠했으며, 나의 만족도(또는 적합도)는 몇 점 정도로 환산할 수 있는지요? 마치 홈텍스에서 항목 별 숫자를 확인하듯 하나하나 떠올려보신다면 어떻게 나오게 될까요?
여기까지 하셨다면 나의 일 연말정산을 간소화 버전으로 마치셨습니다. 아쉬우셨던 항목이나 더 챙겼으면 좋았을걸 하는 항목은 보강할 수 있도록, 잘 해온 항목은 더 잘할 수 있도록 시도해 볼 만한 것들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저의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고,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는지(Position) 구체적으로 적어보니, 다양한 경험으로 학생 대상의 퍼실리테이션은 성장하여 비교적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해야 할 연구 업무는 아쉬움을 느껴, 올 해는 업무를 더 잘할 수 있게 독서력을 강화하도록 저의 지침을 세웠습니다. 함께 일을 하며 에너지를 얻는 타입의 사람들과 그 반대인 사람들도 있었는데요(People), 후자의 경우 지칠 때까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게 담백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분야(Field)에 관련하여 작년 못지않게 혹은 더 어려워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하지만 작년 한 해 나름대로의 의미 있는 시도들을 했었고, 성공이든 실패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올 해에 기존과는 다른 재미있는 일들을 기획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왕 어려운 거, 재미라도 있게 어려워야 계속할 수 있을테니까요.
워디레터 독자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작년 한 해동 안의 나의 일을 연말정산하신다면 어떻게 평가 내리실지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올해의 지침을 세우신다면 어떤 것들을 고려하시나요?
혹시 저희와 나누고 싶은 2018년 일의 얼굴 초상화 작품이 있으시다면 레터에 답장으로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모쪼록 2019년 일을 계획하시면서, 저에게 가이드가 되었던 워디랩스식 연말정산 팁이 여러분께도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정말 해야하는 연말정산도 잊지 마시고요. 🙂
날이 춥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Be wodian,
Ellie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