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그 북반구의 태양이 이제 남반구를 비추어 주고 있습니다. 12월. 공식적으로 호주의 여름이 찾아왔어요. 으슬으슬 뼈마디를 시리게 했던 그 추위가 지나고, 이제 선풍기앞에서 수박을 베어 물며 더위를 식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추위와 함께 연말을 정리하지만 이곳 호주는 더위와 함께 연말을 축하하는 느낌이 더 강한것 같아요. 특히 12월이 되면 휴가를 떠나는 사람도 많아지고 회사는 특히나 일을 줄이고 쉬어가려고 하지요.
12월에 여러분들은 어떤 일로 한해를 마무리 하시는지 갑자기 궁금해 지네요.
저요? 저는 한국에서 혹은 싱가포르에서 일을 할때 (정확히 말하면 아이가 없었던 시절!) 12월에 하루 정도 오롯이 시간을 내어 저와의 데이트를 계획하곤 했어요. 아침부터 가고 싶은 곳을 정해서 그 근처에서 점심 시간을 약간 뒤로 피해 편안하게 점심을 먹고, 근처 서점을 들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골라 찬찬히 읽어보며 호기심과 설레임을 증폭시켜 놓아요. 저는 책을 완벽하게 읽고 난 이후의 느낌보다, 시작할때의 호기심에서 더 많은 기쁨을 느끼거든요. 그리고 문구 섹션으로 넘어가 핸드백에 넣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무게와 크기의 다이어리를 살펴봅니다. 여유가 되면 필기구도 같이 사지만 오래동안 썼던 낡은 볼펜으로도 충분하니 보통 이 부분은 넘어가요. 고심해서 고른 한권의 책, 그리고 내년의 이야기를 여기저기 담아줄 다이어리를 구입을 해서 오분 거리에 있는 커피숍으로 종종 발걸음을 옮깁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들어간 커피숍은 다행히 아주 많이 붐비지 않아 창가의 구석진 자리에서 제 공간을 만들어 볼 수 있지요. 따뜻한 커피 한잔을 오른쪽에 두고 왼쪽에는 책을 그리고 가슴 앞에는 다이어리를 펼쳐 놓아봅니다. 아직 새것이라 뻣뻣한 종이를 쓰다듬듯 눌러서 메모를 시작하지요. 그렇게 1-2시간 정도 커피를 다 마시면서 꼼꼼히 썼던 그때의 시간을 돌아보니, 그것은 저만의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 이었던것 같아요. 일년동안 동분서주하며 힘든 순간, 어려운 순간을 잘 넘어온 저에게 정신적 메달을 선물해 주는 것이지요. 번쩍이는 금메달은 아니지만, 제가 좋아하는 책, 노트 그리고 커피가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어요.
커피숍에서 꼼짝하지 않고 메모를 하던 그때의 질문을 한번 불러와 볼까요?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1-5번까지의 내용은 매해 변함없이 적어보았던것 같아요.
1. 내가 올해 잘 한 다섯가지의 일들.
2. 내가 올해 배운 세가지의 교훈들
3. 다시 기회가 온다면 다르게 할 세가지 실수들
4. 올해 가장 큰 빚을 진 은인, 세명의 귀인들
5. 내년 나를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새로운 멘토들
* 6. 내가 만나고 싶은 그 (요 부분은 남편을 만나기 직전에 썼던 질문과 대답인데, 이때 써두었던 내용과 지금의 남편이 많이 일치해요, 신기하죠?!)
아직 1월이 되지 않은 다이어리에 12월의 내가 미리 생각을 이곳저곳 적어두는 것은, 다가올 1월 즉 미래에 대해서 그냥 백지로 기다리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수동적으로 1월을 기다리지 않고 지난 날들에서 기억해야 하는 사건, 교훈,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겠다는 의지도 좀 있었고요. 바쁜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해내고, 남는 시간을 쪼개 여행을 다니던 그 시절, 저는 저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늘 가지고 살았던것 같아요. 그래서 그럴까요? 큰 돈을 버는 직장인도 아니고, 대단한 회사를 다니지도 않았지만 저는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참 건강하고 밝았답니다.
이제 시간이 흘러 많은 조건이 바뀌었지만, 올해 저는 다시 그런 리츄얼을 의도적으로 꼭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12월이 가기 전에 최소 하루 정도는 그렇게 꼭 해볼려고 해요. 올해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서점을 가고 손바닥보다 조금 큰 다이어리 하나를 사서 위에 써놓은 질문들을 불러와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요. 이런 리츄얼을 통해 자주 잊고 있었던 아니 잃어버렸던 제 자신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다시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워디레터 독자분들에게도 따뜻하고 감사한 일들이 많은 12월이 되길 멀리서 기도합니다.
추운 날씨 건강하세요!
Be wodian,
Jas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