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뉴스레터에 답장과 응원을 해주신 분들께 먼저 감사 인사드려요. (이사준비로 시간을 내지 못해 답장을 못드렸지만, 메일 주신 모든 분들에게 꼭 답장을 드릴 예정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그 뉴스레터를 쓰고 나서 몇주의 시간이 흘렀고, 그렇게 저희 가족은 이틀전 싱가포르로 돌아와 정착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지난 11개월의 시간을 반추해 보니, 북반구에 살때는 익숙하지 않았던 ‘남반구 스타일의 일의 공식’이 수면위로 떠올랐어요. 이 생각들은 워디랩스 팀이 시드니에 왔을때 같이 점심을 하면서 나누었던 이야기 였는데, 그 중의 내용을 몇개를 추려서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새로운 문화의 이방인으로, 아이를 오롯이 보던 전업맘으로 살던 그 11개월에서 느끼고 관찰해 본 ‘남반구 스타일의 (호주식) 일에 대한 공식’ 을 몇개 소개해 볼게요.
1. 직업의 귀천은 거의 0. (직업적 타이틀이 나의 존재감을 곱해주지 않는다)
호주에서는 전철안에서 회사 유니폼 (슈퍼, 약국, 대형마트)을 입거나 건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옷을 입는 다고 해서 타인으로 부터 받는 차별이 거의 없기 때문이지요. 그 유니폼이 그 사람의 지위를 나타낸다고 해도 그 지위가 그 사람 자체를 낮게 혹은 높게 만들지 않습니다. 심지어 저희 동네의 병원에서는 모든 의사들이 (GP) 아무도 가운을 입지 않았어요. 가운을 입지 않아도 의사로써의 직업적 권위는 내려가지 않고, 흙이 묻은 작업복을 입고 전철을 타고 그 사람을 낮게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고소득자의 리스트가 호주에서는 약간 다른데, 일례로 배관공 같이 기술 전문직들이 변호사 만큼 고소득자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직업은 나를 나타내는 ‘하나의 도구’는 분명 맞지만 그 도구가 기본적인 나의 자존감 자체를 대변해 주지는 않아요. 화이트 칼라가 블루 칼라보다 훨씬 더 일을 많이 하고도 돈을 적게 벌 수도 있는 구조와 공식. 그러므로 직업적 타이틀 = 소득수준을 결정하지는 않지요. (여기서 제가 말하는 것은 호주의 전반적인 사회 구조이지, 회사 내의 위계적 타이틀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닌 것을 아시지요?)
2. 능력이란? 누가 먼저 농담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속도는 문제 이해력과 자신감에 비례한다)
호주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같이 웃는 것들을 아주 즐깁니다. 처음 보는 사람 사이의 대화 일수록, 몇마디의 대화로 얼른 유머의 코드를 찾거나 칭찬을 통해 마음을 여는 것이 익숙해져 있어요. 전혀 모르던 사이라도 오분 내로 같이 웃고 그 이후로 오십분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한 호주에서, 농담을 하며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은 아주 증요한 능력이랍니다. 처음에는 그저 흔한 날씨 이야기 가족이야기로 시작하는 것 같지만, 같이 웃고 공감하게 만드는 그 코드를 어떻게 찾는가를 하나의 능력으로 봅니다. 누구를 조롱하거나 흔한 드라마 이야기로 찾아내는 유머가 아니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에 관심이 있고 흥미를 있는지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친밀한 연결고리’ 를 찾아내는 것은 사실 상당한 지능과 정서의 수준을 요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일 수록 이런 능력은 아주 중요해 지지요. 어떤 사람들이 앞에 나가 대화를 시작한다면 (리더의 경우라면 흔하게 있는 일이죠) 대부분의 청중들은 ‘과연 저 사람은 어디서 어떻게 자연스런 웃음과 공감을 보여줄 것인가’를 아주 유심히 기대하고 대화를 들어요. 그 웃음의 코드를 너무 늘어지지 않게 찾아 내는 것 그리고 그 공감을 자신의 대화 목표로 이끌어 가는 것을 아주 중요한 능력으로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의 능력이란, 쉽게 말해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웃게 만들고 내편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3.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늘 우리 가족으로 수렴한다.
일이란 것이 결국 문화의 범주 안에서 정의되고 재편되는 것이니, 호주의 가족 중심 문화를 빼 놓을 수는 없겠지요. 제가 자주 가던 한 빵집은 12월 말 부터 휴가를 쉬더니 2월 초까지 정확히 7주는 휴가로 쓰고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자영업자가 7일도 아닌 7주를 쉬고 돌아오는 것 자체가 낯선 일인데, 여기서는 그리 놀랄일도 아니지요. 오히려 휴가 없이 계속 문을 열고 일을 하는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고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의 목적과 의미는 ‘성취’ 라는 중간 과정을 통해 ‘가족의 완성과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이니까, 일에 대한 태도도 많이 달라요. 그래서 아침 6시에 커피숍을 열고 오후 3시면 칼같이 닫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집 근처 커피숍 주인 아저씨도 같은 맥락의 예가 되지요. 시간을 더 늘이면 돈을 더 벌 수 있겠지만, 그렇게 더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희생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하지요. 인생은 짧고, 가족과의 시간은 한정 되어 있는데 거기에 수입이란 수단 일뿐 목적이 되지 않아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고 즐기는 것. 가족을, 사람을 일의 중심으로 초대하는 것은 제가 다시 외우고 싶은 공식이기도 했습니다.
이 짧은 글에서 한국과 호주의 문화를 1:1로 비교하려고 하는 것도, 어떤 것이 더 낫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랍니다. 11개월의 시간을 그 곳에서 지내며 느꼈던 저의 관찰 일기를 짧게 나마 나누고 싶었던 것 뿐이예요. 큰 맥락에서는 일이 나를 대변한다고 참 오랫동안 믿었는데 어쩌면 그 부분도 다시 정의를 내려야 할 때가 온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저에게는 모든 것을 다 새롭게 보게 된 시간이었답니다.
씨앗이 꽃이 되기 위해서 겉모양은 끊임없이 바꾸고 자신을 새롭게 정의 하듯이 저도 어쩌면 그런 성장의 단계에서 배우고, 비우고, 바꾸고, 다시 변화하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이제 남반구에서 적도 근처의 이 더운나라로 돌아왔으니, 이곳에서 만들고 검증할 일의 공식을 지속적으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왠지 올해는 제가 구구단처럼 외우고 있었던 것들을 다 버리고, 새로운 공식들을 만날 것 같은 기대감이 드네요. 저의 이 ‘촉’이 맞을지 앞으로의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
싱가포르에서,
Be wodian,
Jas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