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로운 집으로 드디어 이사를 마쳤습니다. 컨테이너에 가득실려온 가구와 옷가지 그리고 아이의 장남감들을 받아 짐을 풀고 정리하니 정말 새로운 삶의 챕터가 이곳, 싱가포르에서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 드네요. 머리가 아팠던 이사와 각종 서류 작업과 등록을 모두 마치니 이제야 한숨을 쉬고 잠시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실 여유가 생겼습니다. 물론 이사박스를 다 풀지 못해 아직도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곳에서 이 레터를 쓰고 있지만, 여기까지 무사히 온 것에 대한 기쁨으로 그런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아요. 그 사이 남편은 새로운 일을 시작했는데, 다행히 직장, 업무, 보스와 동료들을 무척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입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올때 웃는 얼굴을 하며 문을 여는 모습을 보니 아내로써, 삶의 동료로서 너무 기쁘네요.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쁨! ^^)
지난 저녁, 새로 이사한 공간에서 식탁을 조립하고 남편과 마주 앉아, 지난 9월 부터 6개월간 롤러코스터를 타고 반년만에 다시 안정을 찾은 느낌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부부로써 같은 공간에 앉아 남편의 업앤 다운을 보며 같이 어지러웠던 저의 경험도 이야기를 했고요. 작년 9월 전 직장에서 내려준 동아줄을 잡고 하늘로 올라가려다 그 동아줄이 끊어져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던 그 시간. 그러다 다시 코너를 돌아 만나게 된 새로운 기회, 사람들, 직장. 그리고 조심히 다시 잡아본 그 밧줄은 결국 우리 세식구를 남반구에서 이 곳 열대 국가로 다시 오게 해주었지요.
남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지난 반년, 3가지의 교훈에 대해서 나누어 달라고 했어요. 작년 9월, 길을 잃어버린 당신이 그 터널을 돌고 돌아 나올 수 있었던 팁에 대해서 공유를 해주면 그 내용을 뉴스레터에 담아보고 싶다고 했지요. 그리고 언젠가 그 길을 다시 잃을때, 오늘의 이 뉴스레터를 다시 보며 남편에게 다시 각성해줘도 좋을 것 같아서요. 남편이 들려준 이야기에 저의 비유를 약간 더해서 오늘의 뉴스레터를 작성해 봅니다. 저와 함께 하나씩 보실까요?
1. 이불안에 숨겨진 돌맹이, 그것을 직관이라고 부르자.
오랫동안 저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남편의 직관은 아주 처음부터 무언가가 불편하다는 신호를 계속 보냈다고 하네요. 이불안에 숨겨진 돌맹이 처럼 무시할 수도 있지만 어딘가가 결리고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냥 참고 지내는 것이 어쩌면 미덕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대로 견뎠지만, 결국에 그 불편함을 감지한 그 직관을 믿기로 했데요. 언제 어떻게 스스로의 직관을 믿고 행동으로 옮길지는 모든 사람에게 다르겠지만 남편이 확실한 신호를 기다린 것은 6개월, 반년 정도의 시간이었다고 해요. 참을성의 부족일까, 새로운 기회에 대한 신호일까.. 남편은 그 불편함을 고요함 안에서 들어보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고 몇번이고 강조합니다. 바쁠 수록 혼자만의 시간을 내어야 이불안의 그 돌맹이를 꺼낼지, 아니면 이불 자체를 버리고 새롭게 찾아야 할지 그 결정을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다고 해요.
2. 용기를 냈다면, 행동으로 보여주자.
따뜻하지만 어딘가 불편했던 이불을 박차기로 결정했다면, 날이 좀 추워도 그 이불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이불을 털어보고, 창문을 활짝열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남편의 경우에는 가장 중요했던 두명, 저와 헤드헌터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 놓았지요) 그리고 그에 맞추어진 ‘고된 작업’을 묵묵히 시작하는 것입니다. 용기를 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용기를 내서 그 ‘결정되지 않은 길’로 걸어 가는 것은 우리의 본성과 반대되는 일이라 괴롭고 외롭잖아요. 그 중 남편이 알게된 작년의 그 교훈은 바로, 고된작업과 외로움은 언젠가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었답니다. 그것이 본인이 원하는 일의 형태이든, 아니면 다른 우연과 기회의 모습이든 그것은 결국에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온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제일 가까운곳에서 지켜본 저도 그 교훈을 다시 보게 되었고요. 뼈저린 외로움 속에서 날리는 그 허공속의 펀치는 부질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예요. 그 연습과 도전을 통해 얻게된 그 근육은 분명 삶에서 소중한 힘이 됩니다. 분명이요.
3. 길게 보는 것, 지루하지만 기다림안에 미덕이 있다.
전 직장에서 내려준 동아줄을 잡아보겠다고 그리고 그 줄을 타고 하늘을 올라가겠다고 했을때, 저는 속으로 이 기회가 fake가 아닐까 혼자 생각을 했었답니다. 남편이 말하는 그 기회가 뭔가 너무 빠르고, 정리되지 않았고, 알수 없는 불편함들이 여기저기 있었어요. 그때는 남편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좋은 것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사실 말하고 싶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이야기 하는 세번째 교훈은 바로, 이 기다림에 대한 ‘참을성’ 이었습니다. 첫번째 기회가 안되었을때 너무 많이 상심하지 않고, 자꾸 되뇌어 보는 것. ‘ 기다림안에 미덕이 있다. 나에게 맞는 더 좋은 기회가 나에게 오고 있다. 그 기회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다.’ 라고 주문을 외워 보는 것이지요. 저도 가끔은 이 세번째 교훈을 각성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속도대로 일이 잘 안되는 것 같을때 숨을 고르고 남편과 이야기 한 이 내용들을 다시 상기해 보려고 해요.
오늘의 이 뉴스레터는, 저에게 안부를 물으며 자신의 근황을 나누어준 한 독자님에게 보내는 글이기도 합니다.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번아웃이 온 것 같다고’ 이야기 한 그 분을 맘에 담아 이 글을 썼는데, 글에 담긴 문장과 단어 중 하나라도 그분의 마음을 위로하고 다독여 줄 수 있기를 바래보아요.
으슬으슬 추웠던 3월이 지나고. 벚꽃이 만개하는 4월이 오네요. 우리의 봄도 그렇게 분홍빛으로 같이 물들길 바래봅니다.
그럼 저는 다시 이사짐을 풀러 갑니다! 🙂
좋은 밤 되세요!
Be wodian,
Jas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