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는 밤에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부풀어 오른 꽃망울이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봄이 시작되고 있구나를 느끼는 요즘입니다. 워디레터 독자분들은 봄의 초입인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워디랩스로 일을 해 온 지난 시간 동안, 워크디자인 프로그램으로 정말 많고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연령별로는 고등학교 1학년 17살 학생부터 72세의 어르신까지, 일의 단계별로는 취업을 준비하는 분부터 신입사원, 경력사원, 이직을 꿈꾸시는 분, 조직에서 성장하고 싶으신 분, 조직을 나와 대표로서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결국 회사를 차리신 분들 등등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범위의 많은 분들의 워크디자인을 촉진해 온 워디랩스인데요, 지난달부터 조금 특별한 분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북한이탈청년들’입니다.
작년에 청년기업가정신재단의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온’의 대표님을 만났고, 그때의 인연으로 이번에 10여 명의 북한이탈청년을 위한 워크디자인 수업을 4주간 진행하였습니다. ‘우리온’은 쉽지 않은 결단과 행동으로 한국사회로 온 북한이탈 주민들을 위해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하고 서로를 이어주는 일을 하는 회사입니다. 그중에서도 2030청년들을 위한 교육을 정기적으로 진행하는데, 기회가 닿아 이번 기수에 워디랩스가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온으로부터 북한이탈청년을 위한 워크디자인을 제안받고 교육을 설계할 때,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교육생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한국말이 서툴지 않을까? 영어를 사용하면 이해가 어려울까? 일반적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분들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일까? 워디랩스 안에서도 많은 고민과 조사를 바탕으로 의견이 오갔는데요, 저희가 내린 결론은 나라, 국적, 연령, 성별이 같든 다르든지 간에, 인간은 모두 다르면서 같다였습니다. 이러지 않을까 저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버리고, 평소 하던 대로의 워크디자인을 가이드 하자는 마음으로 교육을 준비하였습니다.
매주 수요일 2시간씩 진행된 이번 교육에서는 대학생, 취준생, 직장인, 프리랜서 등 다양한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업 첫날 인사를 나누면서 그동안 해왔던 걱정과 우려는 오히려 나의 선입견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행된 4주간의 ‘내 일 찾기 여정-워크디자인’은 여느 때보다도 진지하고 힘 있게, 나의 씨앗으로 남한이라는 토양에 어떻게 자리 잡아 나만의 싹을 만들 수 있을까 의논하고 응원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워디랩스도 다시 새롭게 얻게 된 인사이트가 있는데요, 독자분들에게도 그 내용을 나누어 드리고자 합니다.
인생에 자동운전 기능은 없다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은 자신 뿐입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신없이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지는 때가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떠밀리는 대로 가면서 자동적으로 잘 굴러가면 좋겠다고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어찌하면 잘 되겠지 하고 운전대를 안일하게 잡으면 절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없습니다. 북한이탈청년들은 누구보다도 이를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을 건너 중국 또는 제3국에 머물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한국으로 오기까지, 아니다 생각할 때 가만히 있어서는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겠지요. 현재 나를 둘러싼 상황이, 내가 가고 있는 방향과 속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확실히 붙잡고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방향을 틀거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은 진화하는 도구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성장하기 위해서, 인정받기 위해서 등등 일을 하는 이유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어떠한 이유가 있던 지간에 일은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도구입니다. 이 도구의 한 가지 기특한 특징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진화가 가능한 도구라는 점입니다. 내가 현시점에서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어떤 지식, 스킬, 경험, 인맥을 붙여가느냐에 따라 새롭게 재편될 수 있습니다. 북한이탈청년들은 새로운 사회에서 내가 하기에 따라 ‘진화할 수 있는’ 일이라는 도구를 경험하면서, 새 기능을 하나씩 붙여나가는 재미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전의 그 곳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그 도구로 헤쳐나가는 길 끝에서 내가 바라던 나의 삶을 만나기를 기대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북한이탈청년들과 함께 한 4주간의 시간은 저에게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인지하는 시간이었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다시금 곱씹어보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특별한 경험을 하고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이 감사한 마음을 되돌려주고자 어떻게 나의 일로 사회에 기여할 것인지 고민하는 청년들의 밝고 진지한 눈빛은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잘 뿌리내린 워크디자인의 싹이 튼튼하게 자라서 보는 이를 활짝 웃게하는 꽃으로 피어나길 기대해봅니다.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온도차가 큽니다.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시고요.
독자 여러분의 내일의 일을 뜨겁게 응원하며, 이 레터를 보냅니다.
Be wodian,
Ell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