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는 친구와 얼마전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대하던 승진에서 누락이 되고, 원하던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고, (정확하진 않지만 뭔가) 상사의 미움을 받고 있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는 친구는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삼십분 넘게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다 쏟아 부어내는 동안 저는 그저 듣기만 했지요.
‘그래 그래..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그치, 그럴때는 참 속상하지. 많이 마음이 아팠겠다..’
그런 추임새 정도로만 가끔씩 이야기를 해주고, 묵묵히 친구의 이야기를 한참 다 듣고 나니 뭔가 정신을 차린듯,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네요.
‘쟈스민, 너는 비즈니스 코치자나. 나한테 뭐라고 이야기 해줄 수 있는것 없어? 한마디 좀 해봐. 힘들었겠다, 속상했겠다.. 이것도 좋은데,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해봐. 충고 같은거 말이야.’
‘음.. 코치는 원래 충고 같은 것 하지 않아. 네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직접적으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지 않는다고!’
‘어이, 쟈스민! 너는 내 코치가 아니고 원래 친구잖냐?! 우리 사이에 이론적인것 들이대지 말고, 자 10년차 친구로, 나에게 한번 이야기 해봐.’
…
오늘의 뉴스레터는 이렇게 ‘답을 내어보라고’ 독촉하는 친구와 이야기 나누었던 대화를 간추려 보내봅니다. 친구에게 했던 내용들을 요약해서 생동감있게 (?) 전하고 싶어, 친구에게 말했던 그 친구체(?)를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자 그럼 시작할까요?
자, 친구야. 잘 들어봐. 네 이야기를 30-40분 정도 들으면서 내가 느낀 것이 이런것이 있었어. 너와 나의 사이가 막역하니까, 그리고 나의 생각이 너에게 분명히 힘을 주려는 의도에서 출발 하니까 나의 생각을 편안히 말해볼게.
너의 이야기 안의 너는 완전히 ‘문제 전문가’로 살고 있었어. 네가 일하는 문제를 얼마나 면밀히, 자세히, 그리고 시간차로 기억을 하고 분석을 하고, 관계자들의 못된 습성까지도 다 훌훌 읇는 네가 와.. 대단하다고도 생각을 했지. 네가 겪은 문제는 한둘이 아니었고, 네가 겪게된 문제는 또 얼마나 거대하던지.. 네 이야기를 들으니, 너의 부서의 사람들, 너의 일들이 모두 암흑안의 수풀같더라. 낭떠러지 길을 여기저기 파여있고, 어두운 길에서 팔과 다리 모두를 엉거주춤해서 걷는 네 모습이 상상이 갔어. 이렇게 내가 상상할 수 있도록 도운건, 지금 네가 말해준 너의 묘사 덕분이었지.
그런 너의 이야기 안에 너는 아주 나약한 피해자로 살고 있더구나. 펀치를 여기저기서 맞아도 풀 수 있는 곳도 없고, 적지 않은 경력에도 뭔가 날개를 필 수 없어 우울해 하는 너믜 모습. 그게 전화선 넘어로 보이는 너의 모습이었어. 친구로 바라본 지금 너의 얼굴이 너무 안타깝고 속상했네.
근데 친구야, 내가 하나 알고 있는 비밀이 있어. 이 비밀은 사실 나만 알고 싶을 정도로 아주 아주 멋지고 근사한건데.. 정말 우리의 우정이 다이아몬드처럼 귀하고 소중하니까, 너에게만 내가 살짝 알려줄게. 네가 겪고 있는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비밀을 이번 한번만 알려줄게. 오늘의 이 비밀을 꼭 기억해 오랫동안 간직해봐.
그 비밀은-
‘너의 말을 바꾸면, 네가 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라는 것이야.
네가 사는 세상이 바뀌면 네가 하는 그 말이 바뀌지 않아. 순서는 그렇게 오지 않거든. 네가 먼저 말을 바꿔야 해. 네가 하고 있는 일, 사람들의 평가 (너는 피해자고, 그들은 가해자라는 인식), 네가 속한 산업과 불안한 일의 미래… 그 모든게 너의 지금의 입에서 나오고, 네가 말한 그대로 앞으로도 그렇게 너에게 올꺼야. 네가 주문한대로 너는 그렇게 오랫동안 살꺼야. 네가 말하는 그 고민들, 문제들은- 네가 하는 그 말을 바꾸지 않는 이상, 너에게 앞으로 10년, 20년, 50년동안 지속될 수 도 있고.. (엄청 무섭지?) 네가 힘들어 하는 그 ‘불공평한 미래’는 앞으로도 그렇게 너에게 쭉 불공평할 수 있어.
그러니 친구야. 먼저 네 말을 바꿔보렴.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책상에 앉아 일을 할 수 있고, 가는 길에 편하게 커피 한잔을 사먹을 수 있고, 초여름의 녹음을 누릴 수 있는 건강함이 있고, 집에 돌아오면 너를 반겨주는 따뜻한 가족이 있고, 네가 좋아하는 산책을 할 수 있게 동네 바로 뒤에 멋있는 강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할게 많자나. 그치? 일단 이런 감사함에 대해서 먼저 좀 인정을 하자. 그래야 네 말이 바뀔 수 있는 거름이 생기거든.
그리고 앞으로 이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말고 너의 꿈과 계획에 대해서 더 많이 자주, 이야기하고 선포하자. 꿈? 그게 될까? 어떻게 될까? 그런 질문이 들때는.. 이 것은 신의 영역이니 ‘어떻게’ 되는 그 과정을 시간과 신에게 맡기고 너는 그저 ‘네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일’ 부터 하는거야. 그런 일들을 하루에 한개, 두개, 세개씩 만들어 나가고 그리고 우리 3개월 이후에 다시한번 이야기 하자. 그때도 너는 오늘 처럼 나에게 ‘네가 겪고 있는 온갖 이슈’에 대해서 훌쩍이며 이야기를 할까? 아니면 생활의 활력을 가지고 변화된 일상의 기쁨을 나누는데 바쁠까?
친구야, 너의 말을 바꾸면 네가 사는 세상을 바꿀 수 있어. 나는 정말 그렇게 믿어.
아름답고 충만한 세상은 저기 멀리 무지개 끝에 있지 않고, 네가 쓰는 그 단어와 문장에, 너의 생각에, 너의 에너지와 오늘 하는 작은 그 행동에 있단다. 그러니까 오늘 더 감사하고, 친절하고,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가슴이 뛰는 것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보내자. 너를 힘들게 하는 환경과 사람들은 그런 너를 보며 하나씩 변화되고 사라지고 그리고 바뀔 거라 믿어.
…
친구는 아리송하지만 뭔가 알겠다는 어조로 전화를 끊고 돌아갔습니다. 3개월 후, 가을이 올때 쯤에는 자기가 좀 더 영글어서 돌아오겠다는 다짐도 전해주고, 혹시나 좋은 변화가 생기면 중간 중간 보고를 하겠다는 이야기도 남겼어요.
뉴스레터를 보시는 독자님들에게, 오늘의 저의 이야기가, 친구와의 그 통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빕니다. (혹시 도움이 되셨다면 답장하기로 인사해 주셔도 좋아요! :)) 언젠가 비슷한 맥락의 질문을 교육생분들께 받은 기억이 있는데.. 그 분들에게도 메세지가 마음안에 잘 도착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시원한 팥빙수가 간절해지는 여름이네요,
건강하고 시원하게 이 좋은 시간을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Be wodian,
Jas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