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들이 걸린 A형 독감 탓에, 저도 일주일을 집 밖에 나가지 못하고 돌보아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니, 평소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지난해 식목일에 부엌 앞마당에 심어둔 남천나무 다섯그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영하 14도의 차가운 바람에도 잎사귀 하나 떨어지지 않고 빠알간 열매를 품고 견뎌내는 남천이 문득 무척 대견스러웠습니다. 소나무나 다른 나무들은 대라도 굵지만, 대도 약한 남천이 이렇게 추운 겨울을 견디는 모습에 남천나무의 팬이 되어버렸답니다.
남천이 어떤 나무인가 이리저리 찾아보니.. 악귀를 막아주기 때문에 집앞 대문 근처에 많이 심기도 하고, 옛날에는 혼수나 중요한 선물에 남천 잎을 두어 장 올려 보내곤 했다고 하네요. 삼성의 고 이병철회장이 가장 아끼는 나무이기도 했다고 하구요.
또한 이 나무의 꽃말이 ‘전화위복’이라고 하는데.. 나쁜일 인 줄 알았는데 좋은 일이었다는 ‘전화위복’,
여러분은 전화위복을 경험한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 ‘복인 줄 알았는데 화였다’의 경우는요?
삶의 시간을 오늘이 아니라, 5년 10년 15년 단위로 놓고 보니 대부분의 일들이 이에 해당된다는 것을 문뜩 깨닫게 됩니다.
제가 대학생 때 아버지가 암으로 무척 아프셨습니다. 명백히 나쁜 일이었고, 가족 모두 슬퍼했고 암을 이겨내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는 또래의 다른 분들보다 몸과 마음이 훨씬 건강하십니다. 잘못된 식습관으로 병에 걸렸다는 것을 깨닫고, 지난 십수 년간 자기관리와 운동, 그리고 정신수양까지 자신의 몸과 마음에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모릅니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떠올리면 차갑고, 때로는 어려워 다가가기 어려웠지만.. 지금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지혜롭고 현명하고 따뜻하십니다. 정말 나쁜 일이라 생각했지만, 그 아픔이 없었다면 지금의 아버지의 모습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지난주만 해도 아이가 아픈 나쁜일을 경험했지만, 둘이 오랜만에 시간을 보내며 부루마블 10바퀴를 돌려가며 정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니 엄마의 바쁨을 때로는 원망하던 아이가 확 가깝게 저에게 다가옴을 느낍니다.
그런데 ‘좋은 일’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프로젝트가 되었다고 기뻐하며 희망에 부풀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며 치를 떨고 힘들어하며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 누군가의 좋은 제안에 들떴지만, 사기꾼에 가까운 사람들을 만났던 경험들..
기침으로 콜록거리는 아이와 가만히 앉아 하릴없이 남천나무를 바라보며 전화위복와 또 그 반대의 수많은 일들을 떠올려보니, 왜 저 나무를 남천이라 이름을 붙였는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같다”
한결같이 똑같은 자태의 남천의 봄,여름,가을,겨울의 모습이 화나 복이나 시점의 차이일 뿐.. 결국 같다는것,
물론 좋은 일에 기뻐하고, 힘든 일에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감정이지만 그 모든 일들에 영속성을 부여하지 않고 좀 더 초연해진다면..
좋은 일이라 생각되는 것에도 겸손해지고
나쁜 일이라 생각되는 것에도 이유가 있고, 반전을 위한 기회라 생각해 본다면..
일희일비하며 감정을 소모하는 일들에 시간을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할머니 같은 생각을 품어봅니다.
오늘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아프신 후 미술공부를 그만두고 15년간 붓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문득 남천을 제 손으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이 또한 제 삶의 반전이네요. 🙂 화가 Grace선생으로 10년 후 전시회를 열 수 있지 않을까? 부푼 꿈을 꾸어보지만, 오랜만에 그려보는 서툰 스케치에 한숨을 푹푹 쉬며, 한심해하곤 합니다. ^^
쉽지 않겠지만 그림이 하나 둘 완성되면, 혹 원하시는 분께는 선물로 보내드릴게요. (받고 돌려주시면 안되어요 ^^ )
Be Wodian
Grace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