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때가 있습니다. 뭘 해도 꼬이고 안 해도 꼬여서, 어디서부터 엉켰는지 돌아볼 힘도 없게 기운이 빠지는 날. 일을 하면서 크고 작은 파도를 만나는 것은 일상과 같지만, 가끔은 연이어 쏟아지는 쓰나미급의 파도로 탈탈 털려버려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 되는 그런 때를 만나기도 합니다.
대개 그런 날은 이어폰 볼륨을 최대로 틀어 신나는 음악을 플레이 하기도하고, 집나간 넋을 되찾기 위해 대대적으로 청소를 하며 땀을 빼기도 합니다. 공원에 앉아 하염없이 멍을 때리기도 하고, 저녁엔 따뜻한 우유를 한 컵 마시고 숙면을 청해보려고도 합니다. 보통은 이런 정도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괜찮아지기도 하지만, 이런 루틴도 잘 듣지 않아 괴로운 생각으로 잠도 오지 않는 날도 간혹 있지요.
나의 동력으로는 좀처럼 괜찮아지지 않을 때, 저는 책을 집에 듭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는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이자 철학자입니다. 로마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가 있었고, 그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이기도 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생애 말기에 그가 쓴 일종의 철학 일기입니다. 스토아학파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그가 스스로 삶을 통해 얻은 지혜와 통찰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과 인간 보편적으로 마주하는 도전에 어떻게 대할 것인지 끊임없이 성찰했습니다. 그렇게 남은 명상록은 그 연대와 문화에서 유례없는 독보적인 저작으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과 격려와 위로를 주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가 쓴 명상록을 읽다보면 황제로서, 가장으로서, 인간으로서 살면서 맞부닥치는 수많은 어려움으로 얼마나 괴로워하고 고뇌했을지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이 공동체의 선과 정의를 향하기를 다짐하는 그의 신념과 당부의 말들은 지금 여기로 따뜻하고 힘있게 전달됩니다. 걷잡을 수 없을 때, 차분히 들려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오늘도 나는 주제넘게 이 일 저 일 간섭하고 돌아다니는 사람, 배은망덕한 사람, 제멋대로 교만하게 행하는 사람, 술수를 써서 남을 속이는 사람, 시기심이 많은 사람, 사교성이 없는 무뚝뚝한 사람을 만나게 될거야.” 하지만 그들이 그런 짓들을 저지르는 것은 단지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선의 본성은 아름다운 데 있고 악의 본성은 추한 데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이 비록 잘못을 저지르고 있을지라고 그들의 본성은 나와 동일해서 그들이 나의 동족이자 형제들이라는 것도 안다. 그들이 나의 동족인 것은 그들의 나의 씨족에 속하여 나와 혈연관계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 안에 이성과 신성의 파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내게 해악을 끼칠 수 없고 나를 부끄러운 짓으로 끌어들일 수 없으며, 나도 내 동족인 그들에게 화를 내거나 미워할 수 없다. 우리는 두 발이나 두 손이나 두 눈꺼풀이나 상악과 하악처럼 서로 돕고 협력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제 2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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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너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냐? 그럴 시간이 있으면 네게 유익이 되는 좋은 것들을 더 배우는 일에 시간을 사용하고, 아무런 유익도 없는 일들에 쓸데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을 멈추라. 하지만 그런 후에도 또다른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런 인생의 목표도 없이 그저 자신의 온갖 충동과 생각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달려오느라고 지쳐 버리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제 2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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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외적인 일로 네가 고통을 받는다면, 네게 고통을 주는 것은 그 외적인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네 자신의 판단 때문이기 때문에, 너는 즉시 그 판단을 멈춤으로써 고통을 없앨 수 있다. 네가 어떤 일을 유익해서 꼭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실천에 옮기지 못해서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왜 너는 그 일을 하지는 않고 고통스러워하기만 하는 것이냐.
“내가 제거할 수 없는 장애물에 막혀서 그 일을 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네가 그 일을 할 수 없는 원인이 네게 있지 않기 때문에, 너는 고통스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내 인생이 살 가치가 없어요” 그렇다면, 너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순순히 받아들여서, 마치 자신의 목적을 다 이루고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처럼 그렇게 인생을 하직하라.(제8권-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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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디에서나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신들을 경외하는 자로서 네가 처한 현재의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여 만족하는 것, 지금 너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정의롭게 대하는 것, 그 어떤 불순한 것도 너의 생각 속으로 몰래 들어오지 못하게 너의 생각 속에 현재적으로 생겨나는 모든 인상들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이 그것이다.(제7권-54)
일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상황 가운데 몸과 마음이 제멋대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일들이 생깁니다. 이미 경험한 것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 일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 지를 정하는 것은 오롯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을지라도, 우주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는 말을 위로 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되 ‘오늘의 실패’를 ‘나라는 실패’로 자책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봅니다.
Be Wodian,
Ellie.